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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by 김보라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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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펭's 코코 2020. 2. 1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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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는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와 코멘터리, 감독 대담으로 구성된 책이고, 나는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 본 책은 한국백혈병환우회 책모임 쉼표에서 지원받았다. 환우회와는 투병수기공모전을 계기로 연을 맺게 되었고 쉼표 모임에 1차례 참석한 적도 있다. 「벌새」를 다뤘던 모임 회차 때 나는 이식병동에 있어서 <벌새> 공동상영도 함께하지 못하였다. 영화의 원작이 되는 책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나리오라 그런지 영화 벌새에 대한 나의 호기심에 비해서는 뒤늦은 이제와서야 집어들게 되었다.

 

<벌새>의 포스터이자 「벌새」의 표지

 

  벌새(Hummingbird)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다. 이 작은 새는 꿀을 찾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는데 그 모습이 은희의 여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하여 영화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는 김보라 감독. 그녀가 말하는 은희는 “아주 작은 여자아이지만, 사랑받기 위해서 또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 많은 곳을 날아다닌다.” 극중에서 은희는 다양한 곳에 위치해있는 주변 인물들의 사랑과 관심에 상당히 민감하다. 형제관계에서 일상화된 폭력과 부모의 방치에 익숙해진 소녀이지만 소녀는 소녀이기에. 하지만 여린 더듬이에 감지된 감정은 은희 안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은희를 사랑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각자의 꿀을 찾아 떠난다. 그들에게 은희도 꿀이었지만 그것은 “지난 학기의 일”일 뿐.

  나는 그러한 은희가 영지를 만난 이후에야 벌새가 된다고 본다. 영지는 은희의 마음이 머물 수 있는 둥지를 제공한다. 그런 둥지가 너무나 순식간에 사라지자 은희는 용기를 내어 꿀을 찾아 떠난다. 더 이상 주변에 수줍어하고 무덤덤하던 단순히 작기만한 새가 아니다. 한문학원 원장에 던지는 일갈과 가족들을 향해 내던지는 사자후는 이전의 은희에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영지를 찾아 떠난 여정 끝에서 그녀의 부재를 깨닫지만 은희는 무너진 성수대교를 찾아가 애도함으로써 그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벌새>를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나는 이 세계가 궁금했다.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 호기심을 전혀 자아내지도 않고 무슨 내용일까 싶어 검색한 사람에게 유의미한 내용을 전달하지 않는 문구다. 영화로 태어난 존재를 시나리오라는 한 단계 이전의 형식으로만 접했기 때문일까. 전세계 25관왕의 대기록을 달성했다는 <벌새>의 명성과 주변 사람들의 호평들로 인해 나의 기대와 호기심이 너무 커졌기 때문일까. 난 쏘쏘였다

  감독은 본 책 서두에서 ‘본인 이야기’를 작품화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감독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존재함은 감독의 대담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말했던 마틴 스코세이지에서부터 한국적 맥락이 강하게 녹아져있지만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기생충>까지, '구체성-보편성'은 예술 분야에서 핵심적인 고민이 아닐까 싶다.

  감독 개인의 구체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지점은 은희라는 주인공의 성별이다. 커멘터리에서 글쓴이들은 빠짐없이 '여성'을 읽어내고 있고, 감독 또한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밝힌다. 극에서 은희네는 떡집을 운영하는데 엄마와 달리 아빠가 일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거실에서 사교댄스를 연습할 뿐이다. 가부장적인 아빠가 애지중지하는 둘째 대훈은 은희를 일상적으로 두들겨팬다. 그러나 이 영화에 페미니즘적 관점이 녹아든 방식이 "과장되거나 이데올로기적인 방식"이 아니었다는 감독의 의도 때문일까. 난 페미니즘이 이 작품과 함께 회자되는 정도만큼 주요하게 읽히진 않았다. 그냥 영화를 바로 접했다면 오히려 은은하게 내가 스스로 느꼈을 부분이 평론에 의해서 과잉으로 주입되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을 끌어가는 엔진은 젠더보다는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젠더 관련하여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극중 등장하는 남성들이 악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은희의 갑작스러운 수술에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린다. 대훈은 성수대교가 무너진 날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비극을 피할 수 있었던 첫째 수희에 대한 안도감과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편적이지 않은 캐릭터 설정과 선악구도를 벗어나고자하는 신보라 감독의 의도에서 비롯된 눈물들, 이 부분이 좋았다. 나에게도 지극히 개인적인 눈물이 떠오르며 공감됐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좋지는 않았던 아빠와의 사이가 짧은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상당히 틀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우리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사건이 느닷없이 인생에 찾아들어야만 내 옆 사람이 내 자신보다 더 또렷이 보이는 때를 반드시 맞이한다. 

  자, 이제 영화를 볼 차례다. 

+ 감독이 왜 성수대교 붕괴를 통해 영지라는 중요한 캐릭터를 '영구퇴장'시키는지가 궁금하다. 성수대교도 본인의 개인적인 요소 중 하나인 것인가? 다른 주변인들과 차별화되는 비자발성을 주기 위함인가? 신자유주의식 개발, 빈부 사이의 불안정한 연결고리 등과 같은 성수대교의 정치사회적 상징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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