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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여름] 9주차: 복지국가라는 이상향

Library/Club 창작과비평

by 황제코뿔소 2020. 8. 1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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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은 전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지만 그 정도와 속도 뿐만 아니라 증가하는 불평등에 대응하는 방식 또한 국가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민주국가의 정부들이 빈부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는 통념은 그러한 차이를 설명하는 편리한 가설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불평등 간의 내재적 인과성을 전제로 하는 가설은 불완전하다. 정치사회학자인 클라우스 오페는 만약 어떠한 민주국가가 복지국가라면 그것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임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왜 몇몇 민주주의 국가들은 복지국가인 반면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렇지 못한 것일까? 왜 몇몇 사람들은 사회정책의 확장을 위해 기꺼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자 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잠재적 부작용을 염려하며 높은 세금에 반대하는 것일까?

위의 단락은 내가 미국 박사과정에 지원할 당시 작성했던 연구계획서의 일부이다. 나는 박사과정 동안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평등 간의 인과를 분석하고자 했었고, 그 둘 간의 주요 연결고리로서 세금의 역할에 주목하고자 했다. 특히 여러 측면에서 미국은 나의 주요 관심국이었다. 미국은 민주국가의 표본 중 하나로 거론되는 동시에 복지국가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영미식 조세체제를 운용하고 있다는 점이나 유의미한 상이성을 보이는 다수의 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환경적 조건 때문에라도 미국은 정치경제학적으로 흥미롭고 중요한 사례이다.

미국은 왜 복지국가 만들기에 실패했나
국내도서
저자 : 몰리 미셸모어(Molly C. Michelmore) / 강병익역
출판 : 페이퍼로드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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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책들에 대한 평가가 수록된 이번 주차의 창비 미션에서 나에겐 몰리 미셸모어의 『미국은 왜 복지국가 만들기에 실패했나』가 눈에 밝힐 수밖에 없었다. 김영순 교수의 촌평에 따르면 본 책은 리버럴(미국의 민주당, 자유주의자)이 1935년에 사회보장법을 제정할 당시 직접적 복지지출보다는 세금감면에 주력했고 “핵심적 소득 보장제도는 기여-급여를 철저히 연계하는 임금소득자 기반의 사회보험을 통해 해결하도록 했다”고 서술한다. 저자인 몰리 미셸모어는 역사학자다. 그래서인지 촌평만 보아도 첫 전환점에서의 선택을 중요시 여기는 경로의존적(path-dependent) 설명이 예상된다.

책 제목(원제:Tax and Spend)이 던지고 있는 연구질문 자체가 질적방법론을 채택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분명 일장일단이겠지만 리버럴에 복지국가 건설에 실패하는 과정을 생생한 역사적 디테일로 전개하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접근은 연구의 엄밀성을 떠나서 통계를 활용한 양적연구들에 비해 확실히 대중친화적이다. 유사한 주제를 한국의 사례로 어렵지 않게 풀어낸 김미경 교수의 책도 추천한다.

감세 국가의 함정
국내도서
저자 : 김미경
출판 : 후마니타스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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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부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조차 증세에 있어서는 소극적이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고, 세금감면을 주력으로 하는 영미식 조세체제에서 탈피하지 않는 이상 복지국가를 향한 작디 작은 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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