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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2-03 파주여행 Day1

밖으로/언제나 여행

by 황제코뿔소 2020. 8. 2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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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네봉평메밀향 → 천천히 까페 →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 킹콩빵공장 → 지혜의 숲→ 맷돌우리콩감자탕 → 지지향 게스트하우스

마트에서 클라우드(무알콜)만 사서 바로 파주로 향했다. 비도 거의 오지 않고 산뜻한 출발이었다.

 

연수네 올 때마다 꼭 남기는 시그니처 샷

 

아침은 파주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본래 곤드레 비빔밥을 먹을 예정이었으나 우리가 영업 시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근처에 있는 막국수 집에 들어갔다. 주로 아침을 챙겨 먹는 편이라 그런지 배가 유독 고팠던 나는 막국수를 곱빼기로 주문하고 만두도 시켰다.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땅콩이 올라가 있다는 점이 독특했는데 비빔 막국수와 만두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우리를 응대해주신 안경 낀 아저씨께서도 친절하셨다.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연수는 아침에 다운되어 있더니 먹고 나더니 기운이 꽤나 올라와서 말이 많아졌다 ㅋㅋ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저 뒤의 붉은 집은 천천히하우스라하여 사장님네 집이란다. 부럽쓰.

 

커피를 마실 차례다. 미리 봐 두었던 천천히 카페에 와보니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카페를 모두 둘러봤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포스가 남다른 주인 아저씨의 남다른 친절함.

지하부터 2층까지, 각 층의 느낌이 각기 달랐다.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계단과 벽 그리고 화장실마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무엇보다 목재가 돋보이는 건물 자체가 일품이었다. 우리가 자리 잡은 2층 구석자리는 편백나무 향이 꽤나 진하게 낫다. 알고보니 목조건축대전에서 수상한 건물이었다.

 

 

주문한 음료도 대만족! 커피도 맛났고, 연수가 시킨 차도 티백이 아니라 찻잎을 우려먹는 제대로 된 차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 공간에서 가져온 책을 읽으며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굵어진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이번 여행을 위해 아껴 두었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2018)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을 선사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국내도서
저자 : 신형철
출판 : 한겨레출판 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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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점을 굳이 꼽으라면 공간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 사장님 픽 음악. 차마 꺼달라고는 못하고 은 음량 조절을 부탁(2층은 스피커가 있어서 유독 빵빵하게 들림)드렸더니 흔쾌히 조정해주셨다. 시간이 지나고 방문객들이 늘어나고 가게 안 데시벨이 올라가자 음악 음향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여유로운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고 판단한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기대를 많이 했던 일정인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이곳은 건물 자체로 인상깊다. 입구에서부터 곡면으로 이루어진 백색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연광을 볼 수 있게끔 ‘빛 설계’가 아주 잘되어 있다지만 며칠 내내 비가 내리고 있는 턱에 우리는 음미할 수 없었다.

 

 

우선 입구에 들어서면 카페공간에 이어 왼쪽 벽면에 꼽혀 있는 많은 책들을 볼 수 있다. 미메시스와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책들이다. 미메시스(Mimesis)는 열린책들의 자회사로 예술 전문 서적을 다루는 출판사이다. 열린책들과 전속으로 계약 중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이 눈에 띄게 소개되고 있었다.

 

 

5천원 관람료를 지불하면 안쪽 전시공간에서 입장하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인상깊은 작품들도 많았고 널찍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감상했다는 점도 좋았다. 또한 서로 다른 개성이 드러나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었다.

 

 

다음은 빵집. 빵은 사랑이다. 킹콩빵공장은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문제는 사람도 넘친다는 것.. 조금 갸우뚱한 가격이었지만 장대비를 뚫고 온 데다가 내일 아침을 빵으로 해결할 예정이었기에 몇 가지 골라 담았다. 우리처럼 파주출판단지 근처로 동선을 짠다면 한번쯤 들려 볼만한 정도이다. 누구나 빵은 좋아하지 않는가?

 

 

숙소로 와서 체크인을 했다. 방문을 연 순간 사진으로 본 것처럼 통유리가 아닌 점이 아쉬웠다. 체크인을 할 당시 직원이 “뷰가 괜찮은 곳으로 방 드렸습니다”라고까지 말한 턱에 더욱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연수는 너무나 기대 이상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실제로 잠시 쉬다가 우리는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고 거의 바로 잠이 들었기에 통유리 여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바로 지지향 게스트하우스. 출판단지 안에 자리한 지지향은 종이의 고향이라는 뜻이다. 지지향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지혜의 숲 때문이다. 지혜의 숲은 출판도시문화재단이 문체부의 후원을 받아 조성한 이래 재단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지향에 묶지 않더라도 지혜의 숲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지혜의 숲과 지지향은 같은 건물에 있고, 지혜의 숲 3관은 지지향에 묶는 손님들에게 한하여 24시간 개방한다.

 

지혜의 숲 3관

 

너무나 매력적인 공간이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곳이 없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도 있었고, 독서와는 무관하게 관광지 삼아 들린 듯한 일행들도 있었고, (독서를 위한 공간이기에 공부는 삼가해달라는 안내가 책상마다 붙어있지만)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인강을 듣는 학생들도 꽤나 있었다.

 

 

독서실처럼 정숙 모드는 전혀 아니다.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독서를 하는데는 전혀 무리 없는 분위기. 꽂혀 있는 책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읽어볼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서점도 있고 파스쿠찌가 있는 2관에서는 간단한 취식이 가능하다.

 

 

우리는 킹콩빵공장에서 사온 빵을 맛보며 각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여행 출발 전까지만해도 비가 온다는 점이 아쉬웠는데 막상 여행을 와보니 비 덕분에 더욱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대했던 것들이 알고 보면 별게 아니고 실망했던 것들이 알고 보면 그리 썩 나쁘지 않은 것이 우리 인생 같다고, 창밖 호수를 향해 힘차게 돌진하는 빗방울을 보며 생각했다.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지지향 근처 밥집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24시간 운영한다는 김밥집 간판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우리 둘 다 그곳을 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차를 끌고 시내 쪽으로 나가 감자탕 집으로 들어갔다. 와서 보니 맛있는녀석들 감자탕 편에 나왔던 적이 있는 집이었다.

 

 

감자탕에 콩비지를 올려주는 독특한 곳이었다.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칼칼한 맛이 나는 국물을 콩비지가 어느 정도 잡아주면서 묘하게 맛있었다. 볶음밥이 킬포였다. 연수는 배부르다면 한 숟가락만 먹었지만 남은 볶음밥을 혼자서 다 먹은 나는 한 개를 더 주문하여 바닥까지 긁어 먹었다. 하필이면 막걸리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참으로 통탄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우리는 술 없이도 넓고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배를 두둑이 채운 우리는 밤 갬성에 어울리는 촉촉한 노래들을 틀고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숙소 주변을 드라이브했다. 듣고 싶다고 신청하는 노래들에서 현재 연수가 겪고 있는 아픔이 묻어 나왔다. 그렇게 같은 길을 몇 번이나 맴돌던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무알콜) 맥주를 깠다.

 

나는 어느새 연상의 작용으로 무알콜 맥주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일반 맥주 맛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러자 돌연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차마 끝까지 마실 수 없었다. 내가 아프기 전의 여행들에서 하루 마무리는 단연 음주였다. 더 이상은 허락되지 않는 상황.

밀려드는 씁쓸함으로 잠들고 싶진 않았다. 하루 내내 느꼈던 행복을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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