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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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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제코뿔소 2020. 11. 1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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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학교라는 공간과는 떼기 힘든 호칭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뜻하는 정도이다. 직업적 의미만을 담고 있는 기본값인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교수님’을 만난다. 대학원에서는 교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학과와 학교마다 다를 수 있겠다). 처음에 의아했지만 대학원 진학이 학계(의 변두리)에 발을 들이는 것이기에 배움의 제공 외에도 그 길을 앞선 사람들이란 의미가 담긴 호칭 사용이려니 하고 눈치껏 따라 사용했다. 위의 ‘선생님’들은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라는 환경과 사회적 관습에서 비롯된 통용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속된 공간 및 업계와 무관하게 ‘선생’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선생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는 정의와 함께 율곡 선생을 예로 제시된다. 하지만 출중한 학문과 예능 혹은 문장과 기예,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느껴질 때 선뜻 선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존경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실천한 가치에 대한 존경 말이다.

내게는 리영희가 그런 사람이다. 내가 리영희를 처음 접한 것은 학부 때 읽은 『반세기의 신화』이다. “휴전선 남, 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자신은 ‘천사’, 상대방은 ‘악마’로 지내온 반세기 동안의 신화를 담고 있다. 이후 그의 글과 책을 추가로 더 읽으면서 그가 왜 현대사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반세기의 신화 (개정판)
국내도서
저자 : 리영희
출판 : 삼인 200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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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의 크기와 모양과 힘이 꼭 같다. 우리 인간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와 좌는 동격이고 동등하고 평등한 것이다. 서로 보완적이고 보강적이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 그런 관계가 아니라, 둘이 함께 서로 동시에 있어야 인간사회는 안전하게 진보할 수 있다.

좌, 우, 진보 등이라는 단어들은 얼핏 ‘정치’, ‘남북관계’에 한정하여 생각하게도 되지만 우리 삶 전반에 적용되는 말이다. 그가 저항했던 시대에 비해서야 지금 우리 사회의 제도와 의식이 보다 진보했다 보아도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우리는 그가 던졌던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이것이 바로 그의 사유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다.

특히 그는 실천하는 언론인으로서 우상 파괴와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을 단순히 글을 넘어 삶으로 몸소 보여왔다. 반복된 연행과 해직 그리고 구속은 역사 속 권력들의 불편함과 그의 사유가 지니는 무게를 동시에 드러낸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것은 국가나 애국이 아니라 진실이었다고 말하는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 한번 그를 읽어보고, 그를 써보자(http://blog.naver.com/changbi_book/22213082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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