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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역사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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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제코뿔소 2021. 3. 2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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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역병>, 마이클 스위어츠

고대 그리스,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30년 가까이 전쟁을 치른다. 사실 전쟁은 아테네의 승리로 2년도 안되어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중동을 거쳐 그리스까지 당도한 역병이 바로 그 시점에 아테네를 강타한다. 당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황폐화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역병이 창궐하는 비상사태 속에서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사망하고 종교 및 법률 등, 당시 아테네를 지탱하던 일체의 규범들은 구속력을 상실하게 된다.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전통적인 장례의식을 치르기는커녕 쌓인 시신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오스트리아 의회 앞, 투키디데스 동상

아테네 역병에 걸렸지만 살아남은 투키디데스는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의 모습은 2000년이 훨씬 지난 현재,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인류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중남미에서는 수습되지 못한 코로나19로 사망한 시신들이 집과 거리에 방치되었다. 초강대국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뉴욕에서는 장례식장과 영안실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시신 수십구가 트럭 안에서 썩어가는 채로 발견되는가 하면 북동쪽의 하트섬은 시신을 집단으로 매장하는 장소가 되었다.

뉴욕 하트섬 집단매장

현재의 팬데믹 상황과 유사한 역사적 사례는 중세 유럽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 페스트이다. 페스트균은 쥐벼룩에 비교적 강한 쥐를 통해 서남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페스트가 유럽에서 창궐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사람 간의 감염, 특히 비말을 통한 전염 때문이다. 페스트 이후 중세 유럽을 지탱하던 두 가지 축인 봉건제도와 기독교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코로나19 또한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은 현재의 인류가 살아갈 사회 또한 과거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의 무도>, 미카엘 볼게무트

반복되는 역사의 단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위기 앞에서 바닥을 드러낸다. 페스트가 휩쓸 때 그간 중세 유럽을 지탱해 온 정치와 종교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지자 분노와 증오가 당시 유럽 사회의 최하위층에 있던 유대인들을 향하게 된다. 당시 유대인들의 사망률은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는 청결을 강조하는 기본율법과 코셔 푸드(Kosher Food)라고 하는 그들만의 까다로운 식품 규정 등과 같이 기존의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종교적 의미까지 더해져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바로 떠오르는 아픈 역사가 있다. 그렇다, 바로 간토 대지진. 혼란의 와중에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거짓 선동이 일어났고 수천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 민간인과 군경에 의해 학살당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동양인을 대상으로 하는 증오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백신만이 아니다. 역사로부터의 배움을 통해 증오와 차별이라는 어쩌면 더 끈질긴 바이러스에 휩쓸리지 않도록 정신적 면역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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