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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겨울] 8주차: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기록

Library/Club 창작과비평

by 황제코뿔소 2021. 5. 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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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산문/촌평]은 내가 좋아하는 미션이다.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촌평만 하더라도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11권의 책들을 균형감 있게 소개한다. 이번 주차에도 생소했던 주제가 많아서 즐겁게 읽었지만 가끔은 그 생소함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현장>편에 수록된 최현숙 작가의 “거리 홈리스들이 살아낸 팬데믹 첫해”가 그러했다. 본 글은 내가 ‘잊혀진 사람들’이 경험하는 재난 불평등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음을 상기시켰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분명 코로나19와는 별개의 것이다. 물론 코로나19가 나의 생활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고백건대 막연한 불안과 마스크를 써야 하는 불편함 정도이다.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어렴풋이 생각만 했을 뿐 ‘잊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잊고 있었다.

출처: Associated Press (Richard Vogel)

최현숙 작가의 글은 제목에서도 충분히 짐작이 가듯이, 거리 홈리스들이 겪은 2020년이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살핀다. 맨 먼저 홈리스들의 ‘집’에 해당하는 노숙인자활시설이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일하러 다니려면 시설에서 나가라고 안내한 사례를 소개한다. 팬데믹 시대에 집은 단순히 주거 공간을 넘어 노동 공간으로서도 활용되고 있지만 홈리스들은 주거와 노동의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 어디 그뿐인가? 철도공사 코레일에게는 팬데믹이 역사 인근의 노숙 텐트촌을 강제 폐쇄할 절호의 기회이다.
이어서 저자는 홈리스들이 복지 서비스에서 배제되는 양상을 자세히 다룬다. 노숙인 의료급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명분으로 노숙인 암 환자를 놓고 부산시와 서울시가 치료의 책임을 떠넘기는 와중에 어떠한 의료지원도 받지 못하는 사례와 자신이 현재 노숙 중임을 증명하지 못해 무료 급식을 받지 못하는 사례는 이들과 ‘국가’ 간의 괴리가 얼마나 선명한지 보여준다. 많은 홈리스들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지급하는 방식으로 인해 재난지원금 수급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재난지원금은 분명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으나 그들은 아니었다.

‘긴급민생’이라는 4차 추경과 ‘맞춤형’이라는 2차 재난지원금 대상에 노숙인은 아예 없었다. ‘선별’에도 ‘전국민’에도 ‘긴급’에도 ‘맞춤형’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 K-방역과 재난지원금에서 조금이나마 ‘국가’를 느꼈다면, 그건 당신들의 국가일 뿐이다.  

공교롭게도 본 글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년 말, 동부구치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홈리스들과 마찬가지로 재소자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노동자를 일컫는 ‘잊혀진 사람들’에 해당한다. 집단감염을 두고 법무부와 서울시는 책임공방을 벌였다. 이러한 책임 전가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아우르지 못하는 정치 그리고 시스템에 의존하여 편의적으로 집행되는 행정 및 복지 서비스와 같은 연장선에 있다. 편견으로 낙인찍혀 누구보다 눈에 띄던 사람들은 이제 비가시화되어 모두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거리 홈리스들이 다른 가난한 계층과 다른 점은,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끝자리 혹은 그 바깥의 사람들이어서 노동시장과 가족으로 돌아갈 처지도 아니고 욕구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국가와 자본과 시민에 의한 낙인과 혐오는, 거리 홈리스들에게 모멸과 수치뿐 아니라 분노와 저항도 쌓아가게 한다.

본 글은 올해 초에 출간된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에 “홈리스들이 살아낸 팬데믹 첫해”라는 제목으로 수정, 보완되어 실리기도 했다. 그녀는 구술생애사 분야에서는 잘 알려진 작가였지만, 나는 작가를 본 글을 계기로 처음 알게 되어 그녀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인터뷰 영상과 경향신문에 기고한 오피니언 글들을 쭉 살펴봤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어떠한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다른 해석을 꺼낼 수 있게 하느냐, 자기 삶을 이전과 다르게 혹은 사회가 해석하는 것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게 하느냐”라고 설명한다.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고 전하는 그녀의 작업은 그 자체로도 각별한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를 지니지만, 주로 ‘가난하고 낡은 이들’의 생애를 듣고 적지만 가난과 늙음에 대한 대상화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그녀의 시선은 특히나 귀하다. 사회적 편견과 배제로 인해 유령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쉬지 않고 들여다보는 그녀의 시선과 자취가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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