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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 3주차: 활자를 뚫고 나올 젊은 생각들을 위하여

Library/Club 창작과비평

by 펭펭's 코코 2021. 6. 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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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화 <청년, 한국사회를 말하다>편에는 뜬구름 잡는 얘기가 너무 많다. ‘청년’이라는 대담자들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뜬구름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봐야 하는지, 내 나름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했고 여러 번 곱씹었다. 그 과정의 몇몇 대목들을 짧게 적어본다. 

우선, 글이나 말에만 머물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 많았다. 이길보라는 “코로나19로 닫힌 국경이 왜 사랑하는 이들 사이가 아니라 사업 관계자들에게 가장 먼저 열렸는지에 대해 질문”했다면서 “물론 경제가치는 중요하지만 사랑이라는 가치가 그보다 못한 것은 아니잖아요. 방역이 최우선일 때 사랑, 우정, 만남은 과연 몇 번째인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고 말한다. 너무 공허하다. 팬데믹 상황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가치 중 사랑은 몇 번째인가? 감염자 그리고 사망자 발생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방역보다 사랑이 중요하냐는 질문을 굳이 되묻지 않더라도 사랑이라는 가치를 정부에게서 바라는 것인지 와닿지 않았다. 같은 대목에서 이길보라는 “방역과 경제만이 가 최고 가치가 되어 있어서 정말 놀랐”, “콘텐츠 영역에서는 자극적이고 가벼운 것들만 소비”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만”이다. 이길보라는 한국 사회가 무엇을 우선시하고 소비하고 있는지 너무 편의적으로 그리고 단정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예술인주택’처럼 “넓은 테라스도 있는 공간이 왜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은지 궁금”하다는 말에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고 되묻고 싶다. 아무런 근거도, 구체적인 대안도 없는 생각은 말 혹은 활자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길보라는 유독 자신의 경험을 많이 언급한다. 네덜란드에서의 생활, 자신이 쓴 책, 만든 영화,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 기고한 칼럼, 예술인주택에서의 거주 등. 다른 대담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경험을 자랑하는 듯한 인상을 순전히 나만 받는 것인가. 자랑 좀 하면 어떠하냐만은 ‘보통’ 청년과는 너무 거리가 있다. ‘보통’과 거리가 멀다고 그 목소리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지만 대화의 주제가 ‘청년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이기 때문에 대담자는 청년으로서의 대표성을 지녀야만 한다. 이런 점을 사회자(그리고 기획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청년이라는 호명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얘기해달라는 주문과 함께 대화는 시작한다.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와 현 상황을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대목도 ‘보통’의 청년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그 청년들이 ‘빚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근로소득만으로는 갈수록 빈곤해져만 가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말하는 것이 더 거시적이더라도 더 와닿을 것 같다. 한창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비판적인 책을 많이 읽던 학부 초기 때 교수님이 내게 “너는 주식거래 한번 해보지도 않고 금융자본주의는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라고 떠들면 무슨 소용있냐”라고 일갈했던 것이 떠올랐다. 

반면, 타격감을 느낀 의견도 있었다. 정부가 등교 여부 등을 결정할 때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던 것을 문제시 삼는 공현의 발언이 그랬다. 결단이 필요한 시국에 그것까지 ‘애들’에게 언제 묻고 있냐는 생각이 강했지만, 곱씹어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좀 찾아봤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교육의 주체이자 공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 한창 진행 중임을 알게 되었다. 건축가와 학교를 함께 설계하는 단계부터 교실의 실사용자인 학생과 교사가 자신들이 꿈꾸는 교실을 그림 그리고 의견도 자유롭게 내는 방식이다. 1960~80년대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학생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표준설계도를 통해 학교를 설립하면서 최대한 빨리 그리고 비용을 절감하여 교실을 증축했다. 30년이 지난 1990년대가 되어서야 표준설계도는 폐지되지만, 전국의 학교는 이미 획일화된 이후였고 폐지된 이후에도 표준설계도의 영향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바뀐 교육과정에 맞게, 학생들이 휴식과 교육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점차 탈바꿈하고자하는 노력들이 있었다. 이처럼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가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공현의 발언 중에서 공공주택이 먼저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져서 에너지 전환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대목은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 내가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대상이 무엇이든 효용을 찾는 태도가 지니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리라 짐작된다. 사실 이 세상에 완벽한 태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효용만 찾는 것, 효용부터 찾는 것, 효용을 찾는 것은 제각기 다르다. 현실에서 “so what?”은 중요하다. 말에만 머무르지 않는 생각이 가지는 변화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효용은 연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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