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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피플> 채널A, 로스쿨생들의 로펌 인턴 체험기

Theatre/series

by 황제코뿔소 2020. 3. 2.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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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TRA에서 인턴이 끝나갈 때쯤 진로 고민을 할 당시 옵션 중 하나가 로스쿨 이었다. 날 가슴뛰게 한다기 보다는 여러가지 의미로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법학은 내게 생소한 영역이었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면 잘할것 같았고, 경쟁이 심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자신은 항상 있었다. 결국엔 정치학전공 대학원을 갔지만, 선명함의 차이만 있을 뿐 로스쿨은 꾸준히 내 앞에 아른거렸다. 내가 석사과정을 시작하고 미국 대학에서 박사과정 입학허가를 받기까지 대학원 안팎의 많은 주변 사람들이 로스쿨을 준비하거나 향했으며 나에게 권했다. 특히 작년 말 본인의 법무법인을 차린 꽤나 가까운 형은 리트(LEET) 한번 보기라도 하라는 말을 나에게 끊임없이 해왔다. 내가 로스쿨 주변을 맴돈 것이 아니라 로스쿨이 그렇게 내 주변을 맴돌았다.

진로에 있어서 모든 것이 일시정지 되어 있는 나의 현재에 로스쿨이 나타난 계기는 <굿피플>이라는 TV 예능이다.

 

 

출처: 채널A

 

 

  작년 초중반에 채널A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이다. 내용은 6명의 로스쿨 학생들이 로펌에서 한달간 인턴으로서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데, 해당 로펌의 변호사들은 인턴들을 평가하여 2명을 채용한다. 로스쿨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변시만 합격하면 선택받은 인턴들은 취직을 보장받는 셈이다. 프로그램은 인턴 + 변호사 외에도 강호동, 이수근 등의 연예인과 변호사로 구성된 6인의 '굿피플 응원단'을 보여준다. 이들의 역할은 어떠한 인턴(들)이 부여되는 미션에서 로펌의 선택을 받는지 맞추는 것이다. 이 응원단이 10번 중 7번 이상을 맞추면 로펌은 1명을 더 채용한다는 것이 규칙이다. 

  <굿피플>은 여러 측면에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인 인턴들을 잘뽑았다. 캐릭터가 각자 뚜렷하면서도 서로 겹치는 부분이 적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동일한 미션을 부여받아도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다르다. 이러한 뚜렷한 캐릭터성은 팀미션을 수행할 때도 돋보인다. 스타일과 장단점이 다른 사람들이 얽혀 내용이 더 풍성해진다. 법무법인 창천의 변호사들은 함께 일할 수도 있는 사람을 뽑은 것이겠지만 시청자들에게 인턴들은 결국 TV쇼 출연진이다. 선발 혹은 편집 과정에서 제작진의 캐릭터 설정 능력도 어느 정도는 가미되었을 것이다. 중간에 누군가가 탈락하는 형식이 아니라는 점도 맘에 들었다. 

 

 

출처: 채널A

 

 

  또한 초반에 조금 헤매는 인턴들이 갈수록 두각을 드러내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고, 반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인턴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나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다. 내가 저 상황에 놓였다면 저 정도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까? 과연 나는 어떻게 접근했을까? 하는 식으로 내 자신이 대입되었다.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몰입하여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나만의 결과를 생산해 내는 것에 자신있기 때문에 더욱 자극이 된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백혈병이라는 정말 예상치도 못했었던 병 때문에 지금 이렇게 멈춰있는 나의 현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본 프로그램이 내게 유의미했던 점은 법에 대한 나의 편견을 일정 부분 깼다는 것이다. 결국 미디어 상품이지만 변호사가 주인공인 영화 혹은 드라마와 <굿피플>은 리얼리티 측면과 단계의 측면에서 조금 다르다. <굿피플>은 주인공이 특정 사건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는지 보여주는 픽션이 아니라 취업보장이 걸린 경쟁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관찰 예능이다. 그리고 변호사가 아니라 로스쿨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인턴들이 수행해야하는 다양한 미션들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실무에서 어떠한 역량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변호사가 단순히 자신이 맡은 사건과 관련된 법조문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기계적인 직업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내가 변호사의 일이 고정값의 결과물을 산출하는 것이라 여겼다면 변호사의 가치체계의 우선순위, 경험, 관점, 타고난 성격 등에 따라 결과물은 천지차이로 상이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출처: 채널A

 

 

거슬리는 점들도 있다.

1. 굿피플 응원단의 뻘소리들

2. 너무 대놓고 그리고 꽤나 자주 들어오는 PPL

3. 기존 장면 재탕이 전부인 등장인물 탐구 회차들

  "두려움과 설렘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우리 모두의 ‘처음’ 그 열정을 응원하는 신입사원 탄생기." 프로그램  공식 소개 문장이다.  홍보 글과 포스터에 어김없이 들어가 있는 "내인생 첫출근", "신입사원 탄생기" 문구들은 "미생"을 떠올리게 한다. 제목인 "굿피플"도 여기선 결국 '좋은 인재'에 국한된다. 하지만 본 프로그램의 매력 포인트는 경쟁과 협력을 통한 인턴들의 성장이 아니라 '법'이다. 최소한 내겐 그랬다. 로펌도 로스쿨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곳이지 않을까 싶다. 굿피플 응원단이 중간중간 언급하는 낮은 시청률과 밋밋한 화제성이 어쩌면 방향이 잘못 설정된 홍보에 기인했을 수도 있겠다. 뭐 물론 인기를 얻진 못한 이유가 내겐 포인트였던 '법'이 누군가에겐 프로그램을 보기도 전에 노잼으로 만들어버리는 요소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로스쿨이라는 진로가 확실히 상대적으로 소수가 고려하는 옵션인 것 같긴하다. 

+ 갓튜브에서 "굿피플"을 검색하면 맛보기 영상이 많다. 내가 <굿피플>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도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bQWCKK_plQ&feature=youtu.be

+ 듣고 보는 즐거움이 확실히 있다. 삽입곡들이 참 좋고, 인턴 및 변호사들의 용모와 복장이 깔끔하다. 

+ 이렇게 TV 프로그램을 통해 채용을 하기로 결정한 창천 법무법인도 대단하다.

+ 플래너리 오코너의 대표작 제목 그대로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좋은 학생, 좋은 변호사를 알아보는 것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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