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20 봄] 9주차: 자신을 돌본다는 것

Library/Club 창작과비평

by 황제코뿔소 2020. 5. 25. 23:12

본문

한동안 내게 독서란 여유가 있을 때 간혹 하게 되는 충동적 행위였다. 매일 해야만 하는 의무적 행위였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게 독서는 나 자신을 돌보는 행위이다. 하루아침에 큰 병을 진단받고 기존의 모든 것들을 일시정지한 채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책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 줄씩 읽고 한 장씩 넘겨가며 나를 채우고 돌아볼 수 있는 무언가를 찾다가 계간지 창비에 다다르게 되었다.

계간지에는 일반적인 책 한 권은 가질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우선, 다채로운 구성이 돋보인다. <작가조명>은 본래 몰랐던 작가를 압축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소개해준다. 그의 작품을 통해 직접 접했더라면 온전히 알기 힘들었을 부분을 말 그대로 잘 조명하고 있다. <작가조명>에는 작가를 인터뷰한 저자의 적극적인 안내가 있다면 <대화>에서는 사회자와 출연자들의 대화가 그대로 수록되어있다. 대화 주제였던 우리 정치의 현황과 과제는 20대 국회 평가와 21대 국회에 대한 기대라는 의회정치에 국한되어 논해졌다. 그럼에도 국회라는 권력의 무대에서 활동하는 현역 플레이어들의 대화는 구체적이고 풍성했다. 그밖에 등단한 작가들의 단편소설과 시도 수록되어 있다. 작품들 모두 흥미롭고 몰입도도 뛰어나다. 서로 다른 소설의 주인공들로부터 공통점을 찾아낸다던지 시를 읽고 시인들의 나이를 유추해보는 등 작품들을 비교하고 가지고 노는 재미도 있다.

또한 계간지 창비가 선사하는 다양한 차원의 자극은 또렷한 관점으로부터 비롯된다. 세상에는 그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을 무해한 글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무해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창비는 관점이 있다. 창비의 관점은 독자가 읽고 싶어할만한 글만이 아니라 읽어봐야 할 만한 글을 제시하는 기준이 된다. 문학만이 아니라 사회로까지 닿아있는 이러한 관점은 정치적 성향 중 하나를 일컫는 개념으로 간단히 설명되지 않는다. 생태정치 그리고 탈성장으로의 체제전환을 다룬 이번 호의 <특집>은 플라스틱 사용에 중독된 나를 마주하게 한다. <현장>의 글은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한 5·18이 아직 현재진행 중인 우리의 역사임을 상기시킨다. <논단>은 우리가 마주해야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학계의 담론을 전달한다. 창비의 관점은 최근에 출간된 책들을 접할 수 있는 <촌평><문학초점>에서도 드러난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속에서 우리의 주목이 닿아 마땅할 신간들을 다양한 분야에서 길어내고 있다.

계간지 창비에는 이렇게 여러 층위의 재미가 담겨있다. <독자의 목소리>를 통해서는 같은 내용을 읽은 다른 독자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고 문학상 당선작들도 만나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가 따로 없다. 벌써부터 다음 호가 기다려진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