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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여름] 4주차: 문학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분투의 면모

Library/Club 창작과비평

by 황제코뿔소 2020. 7. 1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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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은 지금 무엇과 싸우는가>라는 타이틀로 묶인 이번 특집에는 총 3개의 글이 수록되어있다. 첫 번째 글 「혁명의 재배치」는 특히나 인상 깊다. 한국 사회가 제일 최근에 경험한 혁명인 ‘촛불’을 중심으로 ‘혁명’을 다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다면성은 작은 ‘촛불’이 거대한 ‘혁명’을 이룩한다는 ‘촛불혁명’ 표현 그 자체처럼 거대한 사회적 사건의 의미를 되짚으면서도 개인의 미시적인 내면 또한 다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인 강경석 평론가는 글의 서두부터 말미까지 황정은의 중편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이하 「아무것도」)를 언급하는데, 우선 ‘촛불혁명’의 의미부터 되짚어낸다. 「아무것도」의 “혁명이 도래했다는 오늘” 이라는 대목에 배어 있는 ‘혁명’에 대한 회의적 거리감을 읽어내면서 작품이 말하는 ‘촛불혁명’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해석한다.

종래의 혁명이라는 관념을 지양하고 갱신하는 혁명(가령 혁명의 혁명’), 그래서 읽는 이들을 언제나 새로운 출발점과 열린 가능성-고양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선사하는-에 놓아두는 혁명

“탄핵심판의 인용결정 따위가 혁명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부주의하고도 납작한 인식에 대한 거리감”은 ‘촛불’ 이후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요청된 익숙한 주문이자 내가 여전히 ‘촛불혁명’이라는 단어를 껄끄럽게 여기는 이유(이 껄끄러움과 불만족 때문에 나는 인용구가 아니라면 해당 단어에 작음 따옴표를 반드시 붙인다)이기도하다. 「혁명의 재배치」는 「아무것도」로부터 촛불의 의미를 규정하는 차원을 넘어서 ‘혁명’이 야기한 개인의 도약의 흔적과 수행성을 읽어낸다. “내게는 단편이 되다 만 열한개의 원고와 장편이 되다 만 한 개의 원고가 있다”는 작품 도입부에 등장하는 화자의 고백을 언급하면서 「아무것도」 자체가 열두개의 원고를 총체화하는 진리공정이라고 평한다. 세밀하고도 탁월한 분석이다.

또한 「혁명의 재배치」는 “발화자가 서 있는 사회적 위치”에 주목한 윤이형의 단편 「작음마음동호회」을 소개한다. 강경석 평론가는 ‘무엇을 말하느냐’만큼이나 ‘어디에 서 있느냐’가 중요한 쟁점임을 환기시키며, 나아가 작품에서 ‘나’가 혁명이라는 공통된 배경과 각자의 상이한 위치에서 도약의 계기를 마주하는 그 순간에 집중한다.

김성중의 단편 「정상인」을 소개한 마지막 장도 좋았다. 앞선 장들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혁명’의 연속성의 차원에서 ‘촛불’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무것도」가 “촛불혁명 이전까지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혁명적 상상력이 대체로 6월항쟁을 계기로 형성되어 90년대 중후반 ‘업그레이드’ 또는 ‘다운그레이드’를 마친 버전”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어 「정상인」에서 “9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수치와 무력의 체질”이 엿보이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인지 독자에게 되묻고 있다.

‘촛불혁명’을 다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혁명의 재배치」는 <우리 문학은 지금 무엇과 싸우는가>라는 특집 타이틀에 부합하면서도 그 내용도 동의와 배움의 측면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번 특집의 2번째 글 「불평등 서사의 정치적 효능감, 그리고 ‘돌봄 민주주의’를 향하여」는 다루고 있는 불평등의 협소함에 아쉬움을 느꼈다. 역시나 젠더불평등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미투 운동과 n번방 사건 등은 페미니즘이 단순한 유행으로 인식되어서는 아니 됨을 재확인시킨다. 분명 『82년생 김지영』이 장르적 재미나 미학적 탁월성, 작가의 유명세 등에 힘입어 화제가 되는 여타의 베스트셀러가 담고 있지 않은 구체성, 즉 현재 한국 사회와의 긴밀성을 내포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불평등 서사의 정치적 효능감”이라는 문구가 앞서는 글에서 ‘여성’과 ‘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본론 중 2/3이나 할애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다양한 ‘문학의 분투’를 소개해줬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한국 사회에 산재된 불평등이 얼마나 여러 층위에서 존재하고 있는지는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우리 문학은 지금 무엇과 싸우는가>라는 타이틀 자체가 너무 거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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