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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인간의 감성: <너를 만났다>부터「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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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펭's 코코 2020. 2. 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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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밤 채널을 돌리다가 한 여성이 VR기기를 착용한 채 가상의 여자아이를 쳐다보다가 나비를 날려보내는 장면을 봤다. 가슴 아픈 내용임을 직감하고 채널을 돌렸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터였다. 알고보니 그 장면이 "너를 만났다"라는 다큐의 일부였다. 이 다큐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MBC 스페셜>의 831회에 해당하는 내용이고 "특집 VR 휴먼다큐멘터리"라는 긴 이름이 따라붙는다. 난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짧은 영상들만 봤다. 예상처럼 상당히 슬픈 내용이었다. 

내가 엊그제 TV화면에서 잠깐 봤던 그 여성은 3년 전 가을, 일곱살이 된 셋째 나연이를 떠나보냈다. 그 딸을 가상현실을 통해 다시 만난 것이다. 좋아했던 슬리퍼와 먹고 싶어했던 간식 메뉴까지 반영된 가상현실 속 나연이는 분명 허구다. 당연히 나연이의 엄마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은이'를 한번이라도 더 만나고 싶어서 출연을 결정했다는 나연이 엄마. "우리 딸 만지고 싶어"를 연신 반복하며 손을 허우적거리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미어진다. 카메라는 이 장면을 다 지켜보고 있는 나은이 아빠와 남은 세 남매도 비춰준다. 나은이의 남은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엄마 살자고 붙들고 놓지 못해서 미안해"라며 울먹이는 모습도. 

 

 

 

 

"하늘나라에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가장 최전선의 기술인 가상현실, 인공지능, 실감콘텐츠가 게임처럼 재미를 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회차정보). 제작진이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본 다큐(편집본)를 보고 많이 울었지만 휴머니즘이 담긴 첫번째 질문보다 '기술'의 가능성에 관한 두번째 질문이 더 많이 곱씹어졌다. 이 다큐는 분명 기술 활용의 좋은 예를 담고있다. 기술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하거나 거기에 가까운 대안을 제공함으로써 인류에 크고 작은 진보를 가져온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여기서의 진보는 생활의 편리성 차원만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보다 섬세한 차원도 포함된다. 본 다큐에서 VR이 나은이 엄마의 마음을 위로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나의 시선에는 기술이 닿을 수 없는 간극이 더 눈에 들어온다. 난 4D 영화를 딱 한번 봤다. 아니 체험해봤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그 영화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였고, 임모탄이 헐벗은 군중들에게 물을 하사하는 장면에서는 얼굴에 실제로 물을 맞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술은 내게 불편함과 불쾌감을 잔뜩 선사했다. 3D 영화 또한 즐기지 않는다. 일반 2D 영화와 가격이 같다고 하더라도 난 3D, 4D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이 몰입을 오히려 방해하기 때문이다.

불후의 뮤지컬 <캣츠>의 영화판이 망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불쾌한 골짜기'를 넘지 못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란 로봇공학이론의 일종인데, 이에 따르면 로봇이 점점 더 사람의 모습과 흡사해질수록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로봇의 행동과 외모가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사해지면 인간이 인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수준까지 접근한다. 이는 로봇분야만이 아니라 의인화된 캐릭터를 생성시키는 문화분야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에 의해 소개된 불쾌한 골짜기 이론

 

 

내가 기술 발전에 대해 보수적인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기술 개발은 누가 주도하는가? 어떠한 기술이 개발되는가? 어떠한 과정으로 기술이 상용화에 이르는가? 기술의 발전은 통제가능한가? 기술이 앞으로 보다 더 발전할 것은 자명해보인다. 그 원동력이 기업의 이윤이든 아니면 현재보다 더 나은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어있는 인류의 DNA이든 어제의 기술은 오늘의 기술이 대체하고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출시되는 새로운 기종들로 인해 스마트폰은 스마터(smarter)폰으로 매일 교체되는 것처럼 말이다. 폰바꾸고싶다. 그렇게 기술은 퇴행하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갈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삶의 질도 그러할까라는 질문에 나는 그리 쉽게 답할 수 없다. 

여유가 생기면 본 포스팅의 맥락에 한정해서 '기술' 관련 책들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가 생각났다. 지난 주에 군대를 간 사랑하는 후배가 문학모임(산책-가장 가까운 대학인연들과 올해 초 결성)에 가져온 책이다. 본 책은 내겐 생소한 장르인 SF소설이다. 후배가 짤막하게 소개해줬던 <관내분실> 파트가 기억에 남는다.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기술로 죽은 사람의 일부를 도서관에 저장하는 시대가 배경이고 모녀가 주인공이다. 이 포스팅의 시발점이 된 <너를 만났다> 다큐와 맞닿은 점이 있을 것 같다. 진지한 책보다는 상상력이 돋보인다는 본 단편소설집을 시작으로 이 주제를 조금 더 부유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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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8 00:00 신고
    가끔씩 기술의 발전은 누굴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너무 빨리 발전해서 속도를 따라잡기 힘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