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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2-03 파주여행 prologue

밖으로/언제나 여행

by 황제코뿔소 2020. 8. 1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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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많은 변수들이 연수로부터 발생했지만, 결국 원안대로 연수네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반복되는 번복과 불확실성에 이미 여행을 다녀온 마냥 지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수이기에 내가 이해해야지.

그렇게 함께 데이트 중이던 펭귄과 함께 연수네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녀석은 애써 괜찮은 척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다가 대문 앞에 두고 간다는 치킨 배달원의 문자를 늦게서야 확인하게 되었다. 심지어 나와 펭귄이 구체적으로 언급한 노랑통닭이 아니라 뿌링클을 주문해 놓은 연수.. 다시 짜증이 스멀거리며 올라왔지만 뿌링클과 치즈볼이 너무나 졸맛탱이었다.

그리고 맥주를 깠다. 여행가서 마시라고 펭귄이 무알콜 맥주를 사줬다. 펭귄은 자신과 함께 있는 상황 외에도 나의 생활양식을 매우 엄격하게 관리해주고 있지만, 술을 워낙 좋아했었던 내가 시원한 맥주 한잔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무알콜 맥주를 언급하며 나를 달래왔다. 국내 최대 백혈병 환우 커뮤니티인 백새모(백혈병 완치로 새삶을 살아가는 모임)에서도 이식 후에 무알콜 맥주를 마신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연수네 오기 전에 펭귄과 방문한 홈플러스에는 다양한 무알콜 맥주를 팔고 있었다. 하지만 알코올 단 한방울도 안 들어간 맥주는 하이트와 클라우드, 국내 제품들 뿐이다. 알고 보니 국제 주류법상 알코올 1% 미만인 경우 알코올 함량을 0%로 표기해도 된다고 한다. 환자 및 임산부들은 주의해야겠다. 특히 나 같은 백혈병 환자들은 알코올만이 아니라 발효 또한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다행히 국내 무알콜 맥주들에 첨가된 호프와 맥아는 발효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처음 맛보는 무알콜 맥주. 하이트는 클라우드에 비해 확연히 맛이 없다. 클라우드는 내가 기억하는 맥주 맛에 꽤나 가까웠다. 물론 견줄 것이 못되지만 말이다. 심신이 힘든 연수는 자신도 무알콜을 마시겠다며 내 하이트를 가져갔고, 나는 클라우드 한 캔을 단숨에 해치웠다. 펭귄은 연수의 이야기를 들어주더니 언제나처럼 간결하면서도 단단한 조언과 위로를 건넸다.

펭귄은 지하철로 귀가했다. 나와 연수는 내일 본격적으로 시작될 여행을 위해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래도 왠지 남는 아쉬움. 연수는 빔 프로젝트를 꺼냈다. 그리고 나는 <지구의 밤>을 추천했다. 아껴보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다. 영상미 측면에서는 <우리의 지구> 보다 더 경이롭고 황홀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촬영한 본 다큐는 밤에만 담아낼 수 있는 생태의 감동을 담고 있다. 이런 영상들일수록 큰 화면의 덕을 톡톡히 본다. 그렇게 우리는 바다 속 밤의 풍경을 틀어 놓고 이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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