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책은 창비에서 모집하는 서평단에 신청하여 받게 되었다. 귀여운 코스터도 함께 딸려왔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책 제목에 비해 작가 이름이 생소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작가가 얼마 되지도 않지만은 특이한 이름이라 생각하여 작가 소개부터 살폈다. 저자는 책을 이미 여러 권 냈을 뿐더러 다수의 앨범도 발매한 음악가인 동시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하여 단편 영화와 웹 드라마 연출까지 맡은 바 있다고 한다.
책을 읽어보니 우선 이름은 본명이었다. 저자는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었고 작사/작곡 워크숍을 꽤나 진행한 바 있는 강사이기도 했다. 게다가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만화를 직접 그리기까지 했다니! 최근에는 코로나 시대의 ‘금융 예술인’이 되기 위해 보험설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저자는 분명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에서 활동하는 ‘능력자’임에 틀림없다.
저자의 화려한 혹은 다양한 이력들을 통해 나는 낯선 세상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내게 더욱 낯설었던 것은 ‘그녀의’ 불편함이다. 저자는 출석부에 남/여로 구분된 성별란이 불편하고 남녀로 분리된 화장실이 불편하다. 대번에 ‘저런 것까지 불편해질 수 있구나..’ 보다는 ‘아니 뭐 저런 거까지 불편해하지?’ 싶었다. 그리고 곱씹어봤다. 이런 ‘과한 불편함’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내 내가 저자의 불편함으로부터 느끼는 불편함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 수 있었다.
한때는 남성 파트너가 나를 예뻐하는 것이 곧 내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삶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예쁨을 받지 못하면 곧 가치가 없는 삶이었고, 그래서 연애를 쉴 수가 없었다...(중략) 남성 파트너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던 행위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역겹게 느껴졌고, 그걸 해 온 나 자신이 제일 역겨웠다. 누군가 나를 만지는 것이 싫어져서 함께 살고 있는 파트너와의 모든 스킨십이 불가능해졌다. (p.203-204)
우리가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는 일상적인 통로들 중 하나가 파트너의 예쁨과 인정 아닌가? 여기서 파트너의 성별은 무관하다. 문제는 파트너의 예쁨도 성별도 아닌 그것 만이 유일한 삶이 되어버린 상태일 것이다. 친구가 연애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까지 싫어지고, 어떠한 성별도 갖고 싶지 않는 혼란의 시간을 보냈다는 저자가 어쩌다 그리고 왜 그러한 생각들까지 다닿았는지 책의 지면을 통해서는 온전히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알아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저러한 혼란과 생각이 ‘페미니즘’과는 별개의 것임을 바랄 뿐이다.
사실 이 책은 내용과 제목이 그리 관련이 없다. 제목과 연관있는 부분은 "전 사실 '좋아서 하는 일'보다 '먹고사는 일'을 우선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먹고사는 일을 정신없이 하다보면 그 일에서 '좋아하는 과정'이 생기곤 합니다." 라는 서문이 사실상 전부가 아닐까 싶다. 이후의 내용에는 저자의 일과 근황 그리고 관점이 담겨있다. "한국에서 프리랜서 노동자로 먹고사는 이야기"라지만 먹고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지도 잘 모르겠고, 프리랜서 노동자보다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훨씬 뚜렷한 내용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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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선뜻 와닿지 않은 대목들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보고자 했던 것은 지면 곳곳에서 저자가 고백하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저자의 눈길을 끄는 만화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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