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다룬 책들을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이전부터 여러 책들이 입후보되었다. 한 지인은 「태백산맥」을 추천했다.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세계를 탁월하게 표현해낸 작품을 읽는 체험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통해서는 『글쓰기의 힘』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알게 되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 방법론 분야에서는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도 고민됐지만 유시민의 책은 이미 꽤나 있기 때문에 보류했다.
나의 선택은 『강원국의 글쓰기』였다. 저자 강원국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연설비서관으로 재직했었던 작가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인 『대통령의 글쓰기』는 2014년에 출간되었음에도 화제가 된 것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순실이 박근혜의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지점과 대비되면서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않았나 싶다.
저자가 tvN <어쩌다 어른> 프로그램에 출연한 회차를 잠깐 본 적 있다. 미디어와 강연을 통한 노출이 꽤 있는 편인 것 같다. 내가 이번에 선택한 『강원국의 글쓰기』에서도 강연 얘기가 제법 자주 등장한다. 그런 자리에서 선보인 입담도 분명 판매부수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 책을 다소 충동적으로 선택한 이유는 저자의 네임밸류 외에도 서문 때문이었다.
내가 습득한 모든 글쓰기 노하우를 담았다고 자부한다. 한 사람의 28년 경험을 이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다. 원고 하나하나가 두 시간짜리 강의 내용이다. 모두 읽으면 100시간 강의를 듣는 효과가 있다. 또한 많은 글쓰기 책의 큐레이터 역할을 자임하고자 했다.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다른 글쓰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도록 하자는 생각으로 썼다. 이를 위해 글쓰기에 관한 책을 100권 가까이 읽었다. (중략) 쓰느라 힘들었다. 이제 당신이 읽느라 고생할 차례다.
상당히 비장하다. 저자의 이 정도의 각오와 자신감이라면 한 번 믿어 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서문은 적중했다. 나는 앞으로 다른 글쓰기 책을 읽지 않을 계획이다. 이 책처럼 뻔한 내용을 굳이 다시 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 책에는 너무 많은 내용이 들어있다. 본문에는 한가지 색깔에 집중하면 그 색 물건만 눈에 띄는 ‘컬러 배스 효과’, 문화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제시한 사진에 관한 개념, 문학비평가 르네 지라르의 ‘모방욕망’,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지도’ 등 다양한 레퍼런스들이 포함되어 있다. 수많은 심리학 실험들도 인용된다. 해당 내용들을 언급하는 저자의 의도는 알겠지만 문제는 글쓰기라는 주제와의 긴밀성은 다소 느슨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레퍼런스들은 그 자체로 번뜩이고 인상 깊은 내용들이라기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종합적인 책을 채우기 위한 엑스트라로 느껴진다. 핫도그의 소시지를 감싸고 있는 빵 같다고나 할까. 그것도 별로 맛없는 텁텁한 빵 말이다.
글쓰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부분들은 당연한 내용이거나 피상적으로만 다루어질 때가 많다. 저자는 평소에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한 도구로 독서, 토론, 학습 그리고 메모를 언급한다. 글쓰기에 필요한 생각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지식, 해석, 경험, 느낌, 상상, 통찰을 제시한다. 이러한 부분들은 볼드처리까지 해가며 강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상당히 얕다. ‘~것도 좋다’, ‘~방법도 있다’로 가득 차 있는 챕터를 읽고 있노라면 현기증이 난다. 글쓰기라는 고차원적인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참고하면 좋을 팁이 어디 한 두개이겠냐만은 여러 요소들을 단순히 나열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쉬웠다. 차라리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다뤘으면 어땠을까? 이미 앞선 책들에서 다 소진된 것일까?
내용 자체가 갸우뚱한 부분들도 다소 있다. 저자는 “남과 다른 글은 어디서 나오는가”라는 제목의 2장을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엉뚱한 질문을 했다가 혼이 난 자신의 친구 이야기로 시작한다. 창의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인데, 이내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으로서 융합, 숙고, 감성, 연결 그리고 직관을 ‘나열’하더니 해당 챕터는 이내 다음과 같이 끝이 난다.
그 친구는 지금 고위 관료가 됐다. 그렇게 된 절반은 그 선생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 이후로 친구는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문을 가지면 위험하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호기심이 거세된 채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잘했을 것이다. 씁쓸하지만 그런 친구가 성공하는 사회다. (p.68)
자신의 친구(가상의 인물일지도 모를 일이다)는 물론이고 고위 관료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이 사회의 씁쓸함을 호명하는 대목은 그 흐름에 있어서 어색할뿐더러 질문하지 않는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한다는 내용은 그 자체로도 와 닿지가 않는다. 무엇보다 [엉뚱한 질문을 했다는 선생님의 꾸짖음 → 그 시간 이후로 질문을 하지 않음 → 고위 관료가 됨] 과 같이 인과성이 결여된 문장들이 거슬렸다. 글쓰기를 논하는 책이 아니던가.
3장의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과” 챕터에는 “좋은 문장 쓰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나는 저자가 ‘진보’정권에서 일했었던 만큼 ‘보수’정권의 대통령들에 대해 평가하는 문장을 균형감 있고 유려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소개할 줄 알았다. 전혀 아니었다. 박근혜는 단문의 필요성을, 이명박은 문장성분 간 호응의 중요성을 위해 정말 짧게 언급될 뿐이다. 당연히 나의 기대와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흠을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흥미유발 외에도 제목이 수행하는 다양하고도 중요한 기능들을 고려해보면 본문 내용과 너무 괴리되어 있는 제목들 또한 이 책의 아쉬운 대목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내 잘못이지. 저자의 글쓰는 역량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기업 회장의 연설비서관으로서 내보인 그의 역량이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는 특정하고 한정적인 지면에는 고스란히 두드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 ‘잘 쓴 글’의 기준은 독자에 따라 상이하며 주제와 형식에 따라 필자의 역량 또한 상이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기술이 주는 감동은 유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글도 마찬가지. 핵심 요소들을 평균적으로 충족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좋은 글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글에 담긴 ‘인식’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사유가 담긴 책(ex. 담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과 글을 많이 읽고, 자신이 직접 써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그렇다, 당연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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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있어서 귀중한 참고가 되는 책일 것이다. 22쇄를 발행했으니 적어도 몇 명에게는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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