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6 - [Theatre/movie] - 영화를 만나는 또 하나의 방법-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이번 영화 리뷰는 '내 인생의 명작'을 소개하는 영화당 이벤트에 남긴 댓글로 대신하려한다. 영화당은 유튜브 SK B tv 채널에서 운영하고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작가가 진행하는 영화 큐레이션 프로그램이다. 내가 영화 카테고리의 첫 포스팅에서도 위와 같이 소개한 바 있다.
매주 업로드 되던 영화당이 최근에 격주 업로드로 개편되어 현기증이 나던 차, 해당 이벤트를 진행하기에 댓글을 끄적여 보았다.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작가가 직접 모든 댓글을 확인한 후에 1등 댓글을 선정한다고 한다. 해당 댓글이 추천한 영화는 9월 4일 영화당에서 소개되는 동시에 OCEAN 홈에서 추천 영화로 편성될 예정! 1등 외에도 여러 명에게 상품을 준다기에 그거라도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만년 영화당원으로서 이렇게 참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미이자 영광이었다. 한편으로는 영화팬들의 다양한 추천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내 인생의 명작’을 꼽는 것은 선택보다는 포기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당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저만의 기준을 추가하여 선정해보았습니다. 바로 <가타카> 입니다. 영화는 유전자 조작이 자유롭게 가능한 ‘머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인공수정을 통해 뛰어난 유전자만을 물려줄 수 있고 성별 선택도 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한 방식으로 태어나진 않습니다. 주인공 빈센트도 인공수정이 아닌 부모의 사랑과 자연임신으로 태어났지만 부모는 출산과 동시에 이루어진 혈액검사를 통해 빈센트가 각종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고 결국 조기 사망할 운명임을 선고받습니다. 그 운명은 유전학적인 확률로 ‘계시’되지만 그러한 확률과 우성인자가 지배하는 사회가 이 영화의 배경입니다.
<가타카>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첫번째는 내용적 측면입니다. <가타카>에는 생각해봄직한 깊은 철학적 질문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결점은 제거되고 우수한 유전자만을 지닌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과연 행복할까? 최소한 효율적이기는 할까? 영화 속에서 이상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은 사회에서 내가 아이를 가진다면 어떠한 방법을 택할 것인가? 합리적인 차별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단연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지니는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합니다. 복잡하지 않은 플롯 속에서 인간의 아름다운 의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인과 바다』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두번째는 연출적 측면입니다. 에단 호크와 주드 로 그리고 우마 서먼까지, 출연하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앤드류 니콜 감독의 연출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돋보입니다. 영어 제목 가타카(GATACCA)의 스펠링에 해당하는 철자들만 볼드 처리해서 나옵니다. 마치 영화 제작 관계자들의 이름은 유전자 코드, 해당 스펠들은 우성인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디테일 또한 눈에 띱니다. 제롬의 저택에 있는 계단은 유전자의 모양을 비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본래 수영선수였던 제롬은 뛰어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2등이었다는 설정과 메달의 색깔을 통한 상기 또한 인상 깊습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멀지 않은 미래’입니다. 보는 시점에 따라 상대적인 시간대이지만 현재도 통용되는 미래의 이미지가 영상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영화의 재미와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측면입니다. 저는 작년에 빈센트가 예상수명으로 ‘선고’받았던 30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백혈병을 진단받았습니다. 박사과정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에 오르기 전에 받은 검진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항암치료와 이식을 받으며 저는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정신력의 힘을 믿어온 기존의 저와는 상반된 태도이지만요. 하지만 저는 <가타카>가 말하고 있는 희망을 믿고 싶고 또 필요합니다. 저와 유사한 상황을 겪으신 그리고 겪고 계신 분들께 공감과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꼽은 명장면은 빈센트가 재회한 동생과 수영을 하는 장면입니다. 단순한 수영이 아니라 바다 멀리 나가다가 먼저 겁이 나서 돌아오면 지는 게임입니다. 빈센트는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나 ‘유전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안톤을 이깁니다. 어릴 때에 이어 성인이 되어 다시 한번 동생을 이겨낸 빈센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길 수 있는 거야.” 영화는 주인공이 ‘하고자만 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 초반의 결정적인 기점을 후반에 와서 탁월하게 활용합니다. 주어진 조건을 꿈에 대한 의지로 극복해내는 상황이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실현과 확인의 순간으로서 제시되는 장면입니다. 또한 해당 장면에서 빈센트가 익사하려는 동생을 구해낸 다음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주인공은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쫓습니다.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꿈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한 주인공의 열망이 처절한 노력의 차원을 넘어 낭만적으로까지 보이는 멋진 장면입니다.
끝으로 만년 영화당원으로서 이렇게 참여하는 것이 영광이고 참으로 즐겁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님, 김중혁 작가님 건강하시구요! 영화당 오래도록 계속해주세요 :)
* 영화 제목 Gattaca는 DNA를 구성하는 구아닌(G), 아데닌(A), 티민(T), 시토신(C)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 <가타카>는 <트루먼 쇼>의 제작 및 각본을 맡았던 앤드류 니콜이 감독을 맡았고,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와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 에단 호크는 <가타카>를 계기로 우마 서먼과 1998년에 결혼하여 2005년에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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