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는 병원과 거래처를 방문하고 무엇보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여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즈음 어디서부턴가 타는 냄새가 강하게 난다. 혼자 집에 남아있던 순자(윤여정)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애쓰다가 농작물 창고에 불을 내고 만 것이다. 제이콥은 농작물을 하나라도 건져내려고 불타는 창고 속으로 뛰어들고 이내 모니카도 그 뒤를 따른다. 그동안 순자는 넋이 나가 정처없이 길을 헤맨다. 데이빗(앨런 김)과 누나 앤(노엘 조)은 그런 할머니를 발견한다. 그리고 데이빗은 할머니를 향해 달린다. 영화는 데이빗이 달리기 직전 잠시 멈칫하는 장면을 비춰준다. ‘뛰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데이빗은 왜 뛴 것일까?
<미나리>가 남달리 다가온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데이빗은 자신이 절대 가볍지 않은 질환을 앓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2년 전 백혈병을 진단받은 나처럼 말이다. 심장에 무리 가지 않도록 뛰지 않고 조심히 걷는 데이빗에게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음식을 가려먹고 그렇게나 좋아했던 술도 이제는 상상으로만 꿀떡이는 내가 보였다. 자신은 죽고 싶지 않다며 데이빗이 눈물을 흘릴 때 항암과 이식을 거치면서 남몰래 그리고 가끔은 펑펑 흘렸던 나의 눈물이 기억났다. 마음이 쓰라렸다. 영화 말미에 의사가 데이빗의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고 말할 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데이빗의 건강 상태가 행여나 극적인 장치로 쓰이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나를 다시 꽃 피우기 위해 조혈모세포(골수)를 공여해주신 엄마는 영화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유일하게 다 함께 행복해하는 그 장면이 가장 인상 깊게 보셨다고 말씀하셨다. 엄마 또한 데이빗에서 나를 떠올리셨을 것처럼, 나는 모니카에게서 엄마를 떠올렸다.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도 모니카와 닮았지만, 엄마는 모니카처럼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 외에도 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두셨기 때문이다. 윤여정이 연기한 할머니에게서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가 떠오르기보다는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한예리에게서 엄마가 보였다. 영화 중간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내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데이빗이 할머니를 향해 힘차게 뛰어가는 장면이다. 영화 맨 처음 주인공 가족이 트레일러 앞에 도착했을 때 데이빗은 마냥 신이 나서 누나와 함께 풀밭을 뛰다가 아빠에게 뛰지 말라는 꾸중을 듣는다. 이어 영화는 곧바로 아이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음을 알려준다. 뛰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장난이 가득한 데이빗에 비해 큰딸 앤은 너무나도 의젓하다. 하지만 누나 또한 여전히 어리다. 이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가 한국에서 온다. 데이빗은 그렇게 함께 살게 된 할머니가 전혀 반갑지가 않다. 데이빗은 난생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인사 대신 ‘킹줌’을 건넨다. 쿠키를 만들지도 못하고 만들어줄 생각도 없는 할머니는 확실히 여느 ‘그랜마’같지 않다. 데이빗은 낯선 냄새까지 나는 그런 할머니가 불편하기만 하다.
바로 그런 할머니가 데이빗의 상태가 호전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영화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답은 상상의 영역에 있다. 실마리가 될 만한 부분은 ‘지금 하는 것이 무엇이든 계속하라’는 의사의 대사이다. 시골로 이사 온 이후 처음으로 방문한 검진이었기에 한적한 지역으로의 이사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시골의 맑은 공기가 그를 낫게 한 것인가? 아닌 듯하다. 데이빗이 교감다운 교감을 나누는 상대는 자연이 아니라 할머니다. 아니면 할머니가 한국에서 달여 온 한약? 이도 아닌 듯하다. 한약은 순자가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서 들고 온 것 중 하나인데 데이빗이 한약을 마시는 장면은 초반을 제외하면 나오지 않는다.
데이빗에게 할머니의 존재는 특별하다. 데이빗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존재는 다름 아닌 할머니이다. 순자는 거침없고 당당하며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모니카가 교회에 봉헌한 헌금을 몰래 회수할 때도, 미나리 씨앗을 심을만한 적절한 장소를 찾으러 집을 나설 때도, 앤이 할머니에게 데이빗이 외출할 수 있도록 옷 입는 것 좀 도와달라고 할 때도 그렇다. 더운 날씨에 멀리 가서는 안 된다며 엄마에게 이를 거라고 경고하는 누나와 달리 할머니는 데이빗에게 계곡물을 튀기며 장난을 걸 뿐이다. 마치 당신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듯 주어진 상황들, 주어진 가족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하는 순자.
할머니는 데이빗을 보살펴야 하는 대상으로 대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를 비롯하여 누나까지, 온 가족은 데이빗을 조심하라고 끊임없이 주의를 준다.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데이빗을 짓눌러 가끔은 얼마나 답답하고, 위축되었을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데이빗은 ‘good boy’라는 말을 할머니에게 말고도 이전부터 들었겠지만, 자신을 ‘strong boy’라고 부른 사람은 할머니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수시로 혈압을 재고 심장소리를 확인해야 하는 조건 속에서 ‘힘이 세다’, ‘튼튼하다’라는 말이 얼마나 생경했을까? 순자와 데이빗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이 아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껴주는 순자 덕분에 데이빗은 죽고 싶지 않다고 속마음을 꺼내고 품 안에 안겨 울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친구에게 인정받은 뿌듯한 순간도 할머니 덕분이다. 엄마, 아빠가 일을 나간 시간에 할머니에게 배운 화투를 교회에서 만난 백인 친구에게 소개한다. 엄청난 카드 게임이라는 친구의 극찬에 데이빗의 어깨는 으쓱하다.
데이빗이 할머니에게 힘차게 달려간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순간의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할머니를 향해 뛸 수 있었을까?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는 의사의 말이 떠올라 뛰어도 되겠다는 판단을 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입을 ‘앙’ 다문 채 전력을 다해 달리는 데이빗의 머리 속에 오늘 처음 마주한 의사가 자리할 공간은 없었으리라. 관성에 따라 덜컥 겁이 났지만 무릅쓰고 달린 것이다. 공허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할머니에게 이제는 자신이 안식과 희망이 되고자 말이다. 주인공이 ‘달리는’ 감동적인 영화(ex. <포레스트 검프>, <천국의 아이들>, <말아톤>)는 여럿 떠오르지만 이처럼 단 한번의 달리기에 ‘strong’한 의지를 담은 영화는 처음이다. 데이빗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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