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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2021)③- 낯선 땅에 뿌리내리는 희망

Theatre/movie

by 황제코뿔소 2021. 4. 6.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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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는 미국 영화이다. 한예리, 윤여정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과 감독이 모두 미국인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국적은 출연진들과 제작진의 국적이 아니라 영화 제작사의 국적에 따라 결정된다. 바로 자본의 국적인 것이다. <미나리>는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PLAN B”라는 제작사가 영화 제작을 총괄했다. <미나리>의 배급사는 <기생충>을 배급하기도 한 “A24”라는 미국 법인이다.

영화의 국적이 지니는 중요성은 감상자와 영화에 따라 상이하다. <미나리>의 국적은 최소한 화두가 되었다. <미나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그 또한 대단한 일이지만, 영화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니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포함한다는 규정 때문에 대상에 해당하는 작품상에는 후보로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문제는 동일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극중 영어 사용 비율이 약 30%밖에 되지 않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나쁜 녀석들>은 작품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영어 사용 비중을 기준으로 삼는 구식 규정도 문제이지만 심지어 그 규정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백인이 나오면 미국영화이고 아시아계 미국인이 출연하면 미국영화가 아니냐는 인종차별 논란까지 불거졌다.

 

 

<미나리>가 미국영화인 이유는 앞서 언급한 주요 관계 회사들, 감독 및 주연 배우(스티븐 연)의 국적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영화가 미국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제이콥(스티븐 연)이 아들 데이빗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장면은 이민자들이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가 말한 ‘쓸모’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이 아니라 밥 벌어먹을 수 있는 ‘기술’에 가깝다.

제이콥이 이 대사를 하는 장소는 병아리 감별 공장이다. 아칸소로 이사 오기 전 살았던 캘리포니아에서 제이콥은 오랫동안 병아리 감별 작업을 해왔고 어느새 상당히 숙련된 솜씨를 갖추게 되었다. 그는 아칸소에 와서도 농장 일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아내 모니카(한예리)와 공장에 출근해 병아리 감별 일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할당을 순식간에 해치우고서는 수컷 병아리들을 소각하는 공장 연기 아래에서 아들에게 하는 대사이다.

 

 

병아리 감별사 직업은 1970년대 즈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많은 한국인들이 택한 일이기도 하다. 정이삭 감독의 부모도 실제로 병아리 감별사 일을 했다고 한다. 이 일은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로 간 간호사와 광부, 중동으로 간 건설노동자들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병아리 감별사는 이러한 직업들과 마찬가지로 한 개인의 역사가 국가의 역사와 겹쳐지는 단면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동시에 병아리 감별사는 그 일의 속성에 있어서 <미나리>라는 작품 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병아리 감별사는 ‘쓸모있는’ 병아리, 즉 암컷 병아리를 감별한다. 암컷 병아리는 커서 달걀을 낳을 뿐 아니라 동일한 양의 모이를 먹어도 수컷보다 더 살을 찌운다. 인간에게 제공하는 효용에 따라 구분된 수컷 병아리는 그렇게 태어난 지 하루 만에 폐기된다. 소각되는 수컷이든 평생 좁디좁은 곳에서 사육당할 암컷이든 병아리도 불쌍하지만, 병아리의 항문 안쪽에 있는 생식돌기를 찾아 감별하는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의 모습도 처연하다. 작품에서 제이콥은 모니카와의 말다툼에서 자신이 언제까지 병아리 똥꾸멍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여기서 해당 직업의 귀천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본 지점을 통해 낯선 타지에서 자신의 효용을 확보해야만 하는 이민자들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척박하고 낯선 환경에서 인간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희망이고 구원인 모니카와 달리 제이콥은 그 이상을, 성공을 바란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로는 부족함을 느껴서일까? 제이콥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대해 경솔한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어, 농장을 경작하기에는 혼자서는 무리이기에 제이콥은 폴(윌 패튼)을 고용하는데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주문을 외우듯 기도를 중얼거리는 폴에게 한심하다는 듯이 콧방귀를 뀐다. 주말에 가족과 차를 타고 귀가하던 와중에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비포장도로를 걷는 폴을 봤을 때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참 못 말리는 친구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는다. 제이콥이 타인의 믿음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모습은 모니카가 순자가 가져온 한약을 달일 때도 나타난다.

영화에서 모니카의 결별 통보와 창고화재 같은 극적인 사건은 맨 끝에서야 발생하고 그 이후에 제이콥과 모니카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영화는 말미의 극적인 사건 이후 몇 장면 없이 거의 곧바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짧은 장면에서 제이콥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단서를 남긴다. 바로 제이콥이 나무막대기로 수맥을 찾는 방법을 수용하는 장면이다. 이게 바로 아칸소 스타일이라며 잘 결정했다고 옆에서 떠드는 폴도 나온다. 한국인은 머리를 써야 한다며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에 돈을 쓸 수 없다던 초반의 제이콥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이후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곳에 동화되고 주변 사람들의 믿음을 존중하는 모습이다. 그 다음 장면이자 <미나리>의 엔딩은 제이콥이 순자가 남긴 희망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바로 개울가에 심어놓은 미나리다. 아무 곳에 심어도 잘 자라는 미나리. 이렇게 영화는 그 어떠한 낯선 땅에도 희망은 뿌리내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은 마음, 타인의 믿음에 대해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구원과 희망이 되는 따뜻한 가능성. 이것은 누구나 살면서 느낄 보편적인 속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 제이콥이 야속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해가 된다. 동시에 이 지점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민자 가족 이야기를 담은 ‘미국영화’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국적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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