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유명한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영화는 분명 감독의 작품이지만 보통 대중은 영화 내내 스크린에 비춰진 배우를 기억한다. 호명할 수 있는 할리우드 감독도 그리 많지 않는 것이 일반적일텐데 고레에다 히로카즈만큼이나 국내에서 높은 인지도와 두터운 팬층이 있는 일본 감독이 있을까? 그의 작품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거의 2년에 한 편씩 성실하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다수 작품들을 단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괴물>은 전형적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유사) 자기 복제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잘하는 것을 다시 한번 너무 잘해냈다는 뜻이다. 이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괴물>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품일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중 아직 보지 못한 영화가 꽤 있지만 이제까지 본 그의 작품 중 제일 좋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모르더라도 상관없다. <괴물>은 꼭 추천하고 싶다.
# 각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감독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각본가이기도 하다. 16편의 장편영화 중 데뷔작인 <환상의 빛>과 이번 <괴물>을 제외하면 모두 자신이 각본을 썼다. <괴물>의 각본은 사카모토 유지가 맡았다. 감독은 일전부터 사카모토 유지 작가의 팬이어서 자신의 작품의 각본을 써달라고 부탁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감독에 따르면 자신은 절대 구사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을 갖춘 매력적인 각본을 작가가 들고 찾아 왔고, 이후 같이 오디션을 열어 호수가 있는 마을과 초등학교에서 대사 하나하나를 함께 다듬었다고 한다. 각본이 그 자체로도 훌륭했겠지만 감독이 해당 각본으로 자신의 역량을 너무나 훌륭하게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둘 간의 긴밀한 호흡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영화를 업으로 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하는 수준으로서 사카모토 유지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일드 바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줄도 전혀 몰랐다. 아동 방임 문제, 유사 가족 문제, 범죄 가해자를 모티브로 삼는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는 다루는 소재에 있어서 비슷한 측면이 있다. 대표작으로 <마더>, <그래도, 살아간다>, <최고의 이혼>이 언급되는 것 같은데 1개 정도는 시간을 두고 감상해보고 싶다.
# 배우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은 매번 아역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미나토’와 ‘요리’의 캐릭터에 맞게 배우 캐스팅도 잘한 것 같다.
다만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이 평소에 담은 아이들은 좀 더 천진난만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 배역은 안고 있는 갈등이 깊어서 아역배우를 선택할 때는 이 점을 더 고려했다고 한다. 또한 그러한 내면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성인 배우들처럼 각본을 읽고 리허설도 거치며 두 배우가 시간을 같이 보내게 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연기가 돋보였던 <우리들>(2016)의 윤가은 감독 인터뷰에서 봤던 얘기와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
인상깊었던 점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대사를 대사로만 집중하지 않고 먹거나 움직이는 등 무언가를 하면서 대사를 말하게 했다는 것이다. 상대의 대사를 듣고 그 리액션으로써 관계의 안에서 대사를 말하도록 연습을 시켰고, 감정을 얼굴만이 아닌 몸의 어디로든지 표현하고 물건에도 감정이 있다는 얘기를 지속적으로 했다고 한다.
이에 연장으로 영화 후반에서 ‘미나토’가 보리차가 든 컵을 기울였다 다시 되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감독의 그러한 지시없음에도 배우가 스스로 보여 준 연기라고 한다. 영화를 보던 당시에 눈에 띄는 부분이었는데, 감독의 지침을 충실히 따라가 촬영하고 몰입하여 스스로 표현해냈다는 점을 알고 나니 더욱 멋진 연기로 보였다.
동시에 감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특히 해당 장면을 촬영할 때 감독은 배우에게 자신의 감정을 생각할 때 자신을 컵이라고 생각하고 그 컵에 어떠한 온도의 무엇을 넣을지, 그 컵의 재질은 무엇일지를 생각해보라고 디렉팅했다고 한다. 아역, 성인을 떠나서 배우들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구체적이고 훌륭한 디렉팅이 아닌가.
# 음악
<괴물>의 OST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맡았다.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거장인 그는 2023년 세상을 떠났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영화 음악에 참여한 마지막 작품이 <괴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반적으로 각본을 집필할 때 자신이 들었던 음악에 기반하여 곡을 의뢰한다고 한다. 전술한대로 외부 시나리오로 촬영한 작품인만큼 집필 중 들었던 음악이 없었지만 촬영 및 편집할 때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곡을 들으며 작업했다고 한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괴물> OST 전체를 담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음악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감정을 극대화한다.
이번 작품과 관련하여 사카모토 류이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에 구원받았다. 그것에 이끌려 피아노 위에서 손가락이 움직였다.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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