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텔링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서술한다는 서술 방식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괴물>을 보며 이러한 형식과 관련하여 나처럼 <라쇼몽>(1950)을 떠올린 관객들이 많았을 것이다. 대학 새내기 때 교양수업에서 알게 되어 도서관 시청각실에서 <라쇼몽>을 보면서 느꼈던 전율은 아직도 선명하다. 서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결국 하나의 진실된 사건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인식론적 질문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이다. 정말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형식적 유사성을 띈 최근 영화 중 떠오른 작품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21)이다. 프랑스 역사상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마지막 결투 재판에 관한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부조리한 권력과 야만의 시대, 14세기 프랑스.
유서 깊은 ‘카루주’ 가의 부인 ‘마르그리트’는 남편 ‘장’이 집을 비운 사이,
불시에 들이닥친 ‘장’의 친구 ‘자크’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자크’는 ‘마르그리트’에게 침묵을 강요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입을 여는 순간 감내해야 할
불명예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자크’의 죄를 고발한다.
권력을 등에 업은 ‘자크’는 강력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장’은
승리하는 사람이 곧 정의로 판정 받게 되는 결투 재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장’이 결투에서 패할 경우,
‘마르그리트’는 즉시 사형에 처해지는 운명에 놓이게 되는데…
본 영화 또한 <괴물>과 같이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장. 장 드 카루주가 말하는 진실”, “2장. 자크 르 그리가 말하는 진실”, “3장.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로 각 장마다 주요 인물의 시점을 보여준다. 러닝 타임이 2시간 반이 넘어갈 정도로 길고, 액션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가 아닌데다가 중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취향을 탈 수 있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하고 말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맷 데이먼, 애덤 드라이버, 벤 애플렉과 같은 유명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보는 맛도 쏠쏠하다.
중요한 점은 <괴물>이 그러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취한 이유는 <라쇼몽>이나 <라스트 듀얼>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기존의 여러 장르물들이 차용한 것처럼 일종의 반전으로서 감춰둔 내용을 뒤에서 공개하기 위함은 더욱이 아니다. <괴물>이 초반에 의도적으로 관객을 오도하는 이유는 영화의 주제를 관객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관객은 조금씩 이야기에 들어가서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과 함께 영화가 끝이난 후에도 과연 누가 괴물인지 생각해보게 되기까지 이러한 형식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 마지막 장면
두 아이가 찬란한 햇살 아래 크게 웃으며 뛰어가는 장면에서는 울컥한 동시에 행복했다.
아이들이 죽었나 싶기도 한 장면이었으나 슬프기보다 행복해 보이는 그들처럼 행복했다.
나도 그렇지만 영화를 함께 본 아내도 두 아이가 죽은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감독은 그렇게 생각할 관객들이 있을 것을 이미 알고 찍었으나 자신이 의도한 것은 두 소년이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살면 된다’라고 긍정하는 결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 많이 기뻐하고 여태 내지 않았던 큰 소리를 내도 괜찮다고 디렉팅했다고 한다.
감독은 이러한 결말에 대해 ‘아이들이 스스로를 긍정하는 것을 과연 어른들이 축복해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축복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기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속 아이들의 생사 여부보다 더 중요한, 울림을 주는 지점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따뜻한 시선의 어른이자 깊고 섬세하게 생각하는 예술 창작자임이 느껴졌다.
아이들의 마지막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다시 태어난 건가?"
"아닌 것 같아. 달라진 게 없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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