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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스파이물의 원조? 그 이상!

Theatre/movie

by 펭펭's 코코 2020. 7. 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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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광고업에 종사하고 있는 로저 O. 손힐은 두 명의 괴한에게 어느 대저택으로 납치된다. 손힐은 자신이 조지 캐플란이라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괴한 일당들은 손힐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고 사고사로 위장하려 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손힐은 음주운전으로 체포되고 경찰들은 물론이고 엄마까지도 손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잡혀갔던 저택에 함께 찾아가지만 그들을 맞이한 안주인은 손힐이 전날 방문했을 때부터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고 설명하고 저택 내부 또한 완전히 달라져있었기 때문이다.
손힐은 해당 저택의 주인이 UN 외교관임을 알게 되고 어찌된 영문인지 밝히고자 UN 본부 로비로 향한다. 그런데 면회 신청을 받고 나온 외교관은 그 저택이 자신의 것은 맞으나 그곳은 한동안 찾지 않았으며 아내는 몇 년 전에 죽었다고 말한다. 어찌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 외교관의 등 뒤로 칼이 날아들고 손힐은 삽시간에 살인자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경찰과 괴한, 모두로부터 추격을 당하게 된 손힐이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이 모든 소동의 시작이었던 캐플란이라는 인물을 찾아내는 것. 이를 위해 손힐은 시카고행 열차에 몸을 싣는 과정에서 금발의 미녀 이브 켄들의 도움을 받게 되고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후 손힐의 도주와 추격을 담고 있는 본 영화는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스파이 액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스케일부터 상당하다. 손힐은 뉴욕과 시카고를 거쳐 노스다코타까지 여러 도시를 돌아다닌다. 주인공의 종횡무진은 단순히 줄거리 상 그런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된다. 빌딩 숲의 북적이는 인파에서부터 달리는 기차,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광활한 옥수수밭, 4명의 위대한 대통령을 조각해놓은 러시모어산 등 실로 다양한 로케이션이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한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테러집단을 쫓는 007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떠오르지 않는가? 실제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007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 나오기 전에 개봉했고 이후 스파이 액션물들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앞서 언급한 스케일 외에도 주인공의 캐릭터와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와의 관계가 대표적인 요소이다. 손힐은 괴한들에게 다짜고짜 납치를 당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떠들고 저택에 도착해서도 “오늘 디저트는 뭔가요?” 하면서 능청을 떤다. 쫓기고 있는 와중에도 ‘미녀’에게 들이대는 점, 여성이 주인공의 주된 동인이 된다(ex. <007 카지노 로얄>의 제임스 본드)는 점도 그러하다.

 

 

히치콕의 작품들 중 러닝타임(2시간 16분)이 가장 긴 본 영화의 줄거리를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한 여정이라고 줄거리를 축약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면 내용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가 본 영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으며 껍데기/실체와 같이 다중의 요소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우선, 히치콕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오인 받는 남자’이다. 손힐은 캐플란이라는 사람으로 오인 받게 되는데 알고 보니 캐플란은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후 손힐은 그 허구의 인물인 척 스스로 연기하게 된다. 아이러니는 주인공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손힐 또한 오인하기 때문이다. 외교관 타운젠드를 자신을 실제로 죽이려 한 스파이 밴덤으로 착각한다.

나아가 관객은 오해에서 비롯된 커다란 소동이라는 외피 안에서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내체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는 손힐과 여비서의 대화 장면으로 시작한다. 코트를 걸치지 않아서 머뭇거리는 비서에게 춥지 않다며 무작정 자신의 다음 행선지까지 같이 걷자고 하고, 일전에 이미 보냈던 편지 내용을 비서에게 불러준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비서에게 핀잔을 하며 거짓말로 새치기하여 택시를 탄다. 자신은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과장을 했을 뿐이라고 합리화까지 한다.
히치콕은 이러한 장면들을 왜 삽입한 것일까? 주인공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빈, 얄팍한 인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 초반 손힐의 엄마가 등장하는 것도 철들지 않은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 연출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손힐은 밴덤의 추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가 되었음에도 스스로 적진에 뛰어든다. 손힐은 CIA의 작전 책임자에게 한 여인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내몰아야 한다면 그깟 냉전 따위 져도 상관없다고 영웅적인 대사까지 날린다. 메인플롯 속에 위와 같은 서브플롯이 들어있고 주인공 자체도 비어 있던 껍데기속을 채워 나가는 캐릭터로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본 영화가 스파이 액션물 특유의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면서도 그 이상을 담아낼 수 있도록 한다.

 

 

이쯤에서 제목 이야기를 해야겠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목이 뭐 이런가 싶었다. 원제인 “North by Northwest”도 뭔가 이상하다. 보고 나니까 뉴욕, 시카고, 노스다코타를 거쳐 다시 뉴욕으로 향하는 주인공 손힐의 이동 경로를 뜻하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북북서라는 방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찾아보니 히치콕 감독이 1963년 인터뷰에서 이 제목은 일종의 환상이며 이 영화는 “이 제목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쫓아가는 플롯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햄릿광이었던 히치콕이 “나는 북북서풍이 불 때만 미친다네, 남풍이 불 때는 나도 매와 톱쯤은 분간할 수 있거든”이라는 『햄릿』의 대사를 차용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정작 “North by Northwest"는 제작사 직원이 제안했다고 한다.
극 중에서 손힐이 CIA 책임자와 함께 러시모어산으로 떠날 때 노스웨스트 항공사를 이용하는데 이는 일종의 유희로 삽입된 설정으로 보인다. ‘노스웨스트 항공을 타고 북쪽으로!’라는 의미로서 원제의 'Northwest'를 항공사 이름으로 해석하려면야 할 수 있겠지만 해당 항공편은 그 장면에서만 단 한번 나올 뿐더러 극 중에서 주인공에게는 비행기보다 기차가 더 중요한 이동수단이기 때문에 항공사 이름을 염두에 두고 제목을 지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동진 평론가가 히치콕의 가장 재미있는 영화로 꼽았던 터라 상영 전부터 기대가 높았던 작품이다.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오프닝 시퀀스, 맥거핀, 클리프행어(주인공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충격적인 결말을 가리키는 용어) 등과 같은 거장의 뛰어난 테크닉을 엿볼 수 있으면서도 장르적 재미 또한 물씬 풍기는 훌륭한 오락 영화이다. <히치콕 특별전> 덕분에 큰 스크린으로 접할 수 있어서 더욱 즐겁게 감상한 것 같다.

 

어김없이 자신의 작품에 카메오로 출현하는 귀염둥이 히치콕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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