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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2020)- 초점도 없이 당겨지는 방아쇠, 그 허탕의 시간

Theatre/movie

by 황제코뿔소 2020. 4. 2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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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역대급 노잼 영화다. 2시간 14분 동안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많다. 어차피 볼 사람들은 보겠지만.. 강력하게 비추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이제 갓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가족같은 친구인 장호(안재홍)와 기훈(최우식) 그리고 갚을 빚이 있는 상수(박정민)와 함께 ‘조직’이 운영하는 도박장을 턴다. 이 한탕으로 그간의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 보고자 하지만 한(박해수)이 이들의 뒤를 쫒는다.

 

 

놀랍게도 저 간단한 내용이 다다. 사실 심플한 골격에도 살을 통통하게 붙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리더와도 같은 준석은 장호 그리고 기훈과 어떻게 연을 맺게 되었는지, 친구라고 할 순 있지만 나머지 둘과는 분명 다른 관계인 장호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준석은 왜 감방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면들은 아예 없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일 정도인 사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아무런 설득의 작업도 없이 설정으로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렇게 치밀하지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도 않는 설정은 하나둘 누적되어 관객-작품 간의 거리는 멀어져만간다.

 

이는 분명 의도적인 연출일 것이다. 문제는 과감한 생략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우선 대표적으로 상수와 기훈은 죽은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핵심 조연 캐릭터들의 퇴장 장면을 굳이 넣지 않은 것은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때문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 밖에도 추격자인 한은 핵심인 준석의 정체를 무기를 제공해준 무기상을 조져서 알아낸다. 이후 준석 일당이 달아나는 과정에서 호텔이면 호텔, 병원이면 병원 가는 곳마다 너무나 쉽게 한은 나타난다. 도박장에서 일하던 상수의 가담 여부와 준석 패거리의 아지트 위치도 그냥 들통이 난다. 그것이 전국의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경찰차(정확히 그가 경찰인지는 알 수 없다)의 기능 덕분이라는 식으로 영화는 대충 얼버무린다. 아니 누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콕 집어낼 수 있는 정도의 감시사회라는 것인지 그렇다면 처음부터 무기상 일당을 죽일 필요가 뭐가 있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조직이 돈보다 더 문제시했던 하드 드라이브도 결국 어떻게 다시 회수되었는지 작품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 가져갔다는 한의 대사로 너무 편리하게 처리할 뿐이다.

이런 엉성함은 장소와 배경, 세계관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간호사 2명 외에는 인적을 찾아볼 수 없고 어두컴컴한 병원은 도대체가 운영 중인 것인지 버려진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준석이 결국 도착하는 대만은 디스토피아적인 한국과 달리 너무나 평화롭고 한적하다. 

 

 

그럼 각본까지 맡은 윤성현 감독은 도대체 무엇에 집중하고자 한 것일까? 이 부분이 메워지지 않는다. 무의미한 장면들(ex.준석이 계속 꾸는 악몽)은 많고 페이스는 너무 늘어진다. 액션이 특별한 것도, 서스펜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본 작품에서 총격전이 많이 나오지만 말 그대로 지루하다. 사냥꾼 한에 비해 준석 일당은 너무나 어설프다. 유효타 한방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허공에만 총알을 싸지른다. 캐릭터들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하는 선택들 또한 하나같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좀처럼 몰입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구도인 것이다. 그래서 속편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도 절대 기대감을 일으킬 수가 없다. 영화 <베를린>의 마지막 대사“Vladivostok, one way"에서 오는 전율 말이다.

<파수꾼>이 장편 데뷔작이었던 윤성현 감독과 배우들로 인해 꽤나 기대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는 너무나 어설픈 망작이다. 앙상한 내용에 분위기는 겉돌고 전개는 지루하다. 결국 법적 분쟁까지 휘말리게 된 이런 초라한 작품을 넷플릭스는 영화 총제작비인 120억에 가까운 돈을 주고 샀다고 한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되었다고 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 시간이 사냥 당했다. 소중한 토요일 저녁을 날려버린 허탕의 시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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