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라는 거장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분이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영화계에서 서스펜스의 대가라는 칭송을 받는 위대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이다. 1899년생인데 1980년에 사망하였으니 장수하신 편이다(TMI). 그의 독창적인 기법은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나는 20살 초반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갔을 당시 쇼핑을 하다가 티셔츠 프린트로 이 사람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두 번째 TMI). 이후 히치콕의 명성만 접하다가 <히치콕 트뤼포>라는 영화로 히치콕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1962년, 영화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히치콕에게 1주일에 걸친 인터뷰를 제안한다. 그렇게 성사된 대담과 마틴 스콜세지, 데이빗 핀처 등과 같은 현 시대의 명감독들의 히치콕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과 논평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히치콕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부터 그를 흠모했던 트뤼포의 팬심과 두 감독의 우정이 돋보이면서도 두 사람의 대담 속에서 히치콕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히치콕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꼭 추천하는 영화이다.
오늘 리뷰할 <싸이코>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싸이코>는 히치콕 감독의 작품들 중 분명 가장 대중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본적은 없지만 아래의 장면을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여성의 이름은 마리온 크레인. 마리온은 애인 샘과의 새 출발을 꿈꾸며 은행에 입금해야하는 회사 돈 4만 달러를 들고 달아난다. 도주 첫날 밤 도로변의 낡은 “베이츠 모텔”에 묶게 된다. 모텔 주인인 노먼 베이츠는 마리온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는 친절을 베풀면서 모텔 바로 뒤 언덕에 있는 저택에 아픈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마리온은 잠자리에 들기 전 샤워를 하는데 머리를 올려 묶은 검은 형상이 욕실에 나타난다. 위의 이미지는 마리온이 괴한의 형상을 봤을 때의 장면이다. 저렇게 비명을 지른 직후 칼로 난도질을 당하여 죽게 된다.
참고로 마리온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을 스포일러로 보기는 힘들다. 본 영화가 60년 전에 개봉되었다는 사실을 제쳐두더라도 저 장면은 절반이 채 되지도 않았을 때 나오며, 후반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독특한 서사구조에서 히치콕의 탁월함을 맛볼 수 있다. 관객은 맨 처음 쇼트에서부터 쭉 등장하던 마리온에 몰입하게 된다. 마리온은 몸이 좋지 않다며 일찍 퇴근을 했지만 도시를 빠져나가던 도중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장을 마주치는가하면 중간에 차안에서 노숙을 하게 되면서 이를 계기로 경찰까지 그녀를 수상히 여기며 뒤따라 붙게 된다. 관객은 중고차 업자를 통해 차까지 바꿔가며 4만 달러를 가지고 달아나는 마리온과 돈의 행방에 자연스럽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로 진행되던 작품이 후반부로 가면서 미스터리로 장르가 변주된다. 그야말로 서스펜스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중적’인 구조는 영화 후반을 관통하는 반전과도 일맥상통한다. 형식과 내용의 일치는 많은 명작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싸이코>에서 반드시 언급해야하는 용어가 있다. 맥거핀(MacFuffin)이다. 맥거핀이란 영화에서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극적인 장치를 말한다. <싸이코>에서는 4만 달러가 이에 해당한다.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돈다발의 행방은 중요치 않게 된다. 사진에 비유하자면 포커스로 장난치는 기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중요한 줄 알았던 피사체가 알고 보니 헛다리를 짚게 만드는 트릭인 것이다. 맥거핀 효과는 어디서 유래된걸까? 그렇다. 바로 히치콕이 맥거핀의 창시자이다. 히치콕은 『히치콕과의 대화』(위에서 언급한 트뤼포가 히치콕과 나눈 인터뷰를 엮은 책)에서 맥거핀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미션 임파서블3>(2006)의 ‘토끼발’도 대표적인 맥거핀이다. 이단 헌트(톰 크루즈)는 전 세계를 돌면서 오웬(필립 세이모어 호프만bb)으로부터 ‘토끼발’을 회수하고자 고군분투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토끼발’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처럼 히치콕 그리고 <싸이코>는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히치콕의 독창성은 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모방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에겐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히치콕의 선구적인 작품들을 당시의 맥락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이다. <싸이코>에서 편집 기법이 돋보이는 장면들도 이에 해당한다. 욕조에서 마리온이 살해당하고나서 카메라는 물줄기를 쏟아내는 샤워기를 비춘다. 그 다음 마리온의 피가 물에 섞여 배수구로 흘러들어가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이 원형과 소용돌이의 이미지는 죽은 마리온의 눈동자로 디졸브(한 화면이 사라짐과 동시에 다른 화면이 서서히 나타나는 장면 전환 기법)된다. 디졸브는 노먼 베이츠의 얼굴을 비추는 엔딩 장면에서도 쓰인다.
히치콕과 <싸이코>는 영화 마케팅과 관람 문화에 있어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싸이코>는 로버트 블록(Robert Bloch)의 『싸이코』가 원작이다. 히치콕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이 원작 소설을 대량으로 사들이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지금의 SNS는 물론이거와 인터넷 네트워크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는 실제로 유효했을 것이다. 나아가 히치콕은 <싸이코> 개봉에 앞서 ‘스포일러 금지’, ‘상영 뒤 입장 금지’ 캠페인을 일종의 영화 마케팅으로 활용했다. 지금 우리에겐 익숙한 에티켓의 원조가 <싸이코>인 것이다.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제작자로서의 히치콕의 뛰어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형식과 주제의 일치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 이는 위에서 언급한 서사구조 외에도 작품 전반에 녹아있다. 욕조 살해 장면이 대표적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장면은 길이로는 45초에 불과한데 많은 쇼트로 구성되어 있다. 검색해보니 총 78개의 쇼트라고 한다. 히치콕이 이 장면을 위해 카메라를 78번이나 옮겨가며 찍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살인 장면을 쪼개어 연출한 이유는 범인의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라기보다 충돌하고 분열된 이중성이라는 <싸이코>의 핵심 내용과 분명 맞닿아 있다. 이중성이라는 주제는 노먼 베이츠의 취미에서도 드러난다. 모텔 관리인 집무실은 박제된 새들로 가득하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지만 자유로이 날지 못하는 상태로 박제된 새들은 거금을 손에 넣었지만 무참히 살해당하는 마리온 크레인(Crane-학, 두루미)과도 같다. 앞서 말한 디졸브 기법이 쓰인 장면들에서 2개의 상충하는 이미지(죽음의 소용돌이와 눈동자, 노먼 베이츠와 노모)가 겹쳐지는 것도 이러한 주제를 담고자한 히치콕의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싸이코>를 보다 “싸이코스럽게” 만드는 것이 음악이다. 샤워 살해 장면이 쉽게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도 있겠지만 바로 그 장면에 삽입된 현악기의 기분 나쁜 소리(?) 때문이기도 하다. <싸이코>에서 음악이라는 요소는 사실 오프닝 때부터 미친 존재감을 내뿜는다. <싸이코>의 음악을 맡은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은 <현기증>을 포함한 히치콕의 다른 작품들 외에도 <시민 케인>, <택시 드라이버> 등 다수의 유명한 작품에 참여한 바 있다. 평소에 영화 음악(관련하여 포스팅 예정!)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특히나 기억에 남는 대목이다.
그 밖에도 히치콕과 <싸이코>는 언급할 거리가 작품 안팎으로 너무나 많지만 히치콕의 대표 걸작을 영화관에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소개하면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바로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개최되는 ‘알프레드 히치콕 특별전’이다. 오는 6월 25일(목)부터 7월 16일(목)까지 진행되는데, 국내 미개봉작인 <서스피션>을 포함하여 10편을 상영한다. 사실 국내에서 “히치콕 특별전”은 몇 차례 개최했었다. 2017년엔 아트나인에서 2018년에는 CGV아트하우스에서 열었다. 하여간 반가운 소식! 넷플릭스에 있는 <싸이코>와 왓챠플레이에 있는 <이창> 등 히치콕 영화 몇 편을 제외하면 그의 유명한 다른 작품들은 접하기 쉽지 않다. 아직 코로나 때문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이번 특별전이야말로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영화 팬들에겐 대가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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