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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5 역사 산책 (feat. 남산 둘레길)

Diary/오늘은

by 황제코뿔소 2020. 9. 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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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역 4번 출구 → 백범광장 → 안중근의사 기념관 → 남산 둘레길 → 목면산방 → 위안부 기억의 터 → 남산골 한옥마을

 

 

솔방울(등산모임) 4대 장을 맡고 있는 한솔이가 공휴일에 가볍게 등산을 하자고 카톡방에 투표를 진작 올렸다. 한 명이라도 참가한다면 같이 가겠노라 강한 의지를 밝혔지만 모인 인원은 총 4명. 내가 아프면서 솔방울의 활기가 확 누그러진 것도 있지만 각자 늦깎이 군대, 지방 발령, 수험 등으로 함께 할 수 없게 된 멤버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우리 모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모임의 빈도가 서서히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비가 왔다 갔다 하는 날씨가 반복되던 때라 등산보다는 가볍게 남산 둘레길을 거닐기로 했다. 우선 회현역 4번 출구로 나와 좌측으로 꺾어 조금만 올라오면 남산공원 입구 안내판이 나온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계단에 주눅 들지 말고 쉬엄쉬엄 올라가다보면 성곽길이 나온다. 밤에 와도 좋을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펼쳐진 백범광장. 광장보다는 공원에 가까운 공간이다. 속이 뻥 뚫린다. 안개까지 낀 날씨여서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이하게 생긴 건물(서울시교육청)도 한 몫한다.

이시영선생상과 백범김구상이 한 쪽 산책로에 자리하고 있다. 이시영 선생은 만주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고 독립군 양성에 힘쓴 독립운동가이자 경희대학교의 전신인 신흥초급대학을 설립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그는 정치인이기도 한데, 초대 부통령을 지내다가 6.25 전쟁 이후 이승만 정부를 규탄하며 부통령직을 사임했다.

 

 

 

 

백범김구상 앞에서 단체로 묵념하는 일가족이 인상적이었다. 큰 딸이 대학생 정도 되어 보였는데 부모님과 8월 15일에 이런 곳에 와서 묵념까지 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백범광장은 바로 안중근의사 기념관으로 이어져있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부터 활동과 사상 등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 동선을 이쪽으로 시작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기념관은 다행히 운영 중이었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총 4개 층으로 이루어져있다. 광복절을 맞이해서인지 화창하지도 않은 날씨에 가족 단위로 방문한 관람객들이 꽤나 있었다.

 

 

 

 

도마 안중근에서 도마는 안중근의 호가 아니라 세례명이다. 안중근은 마지막 고해성사를 옥중에서 했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12 제자 중 하나였던 Thomas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의 세례명도 ‘토마스’인데,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상으로서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나에게 어울리는 세례명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카라바조-의심하는 도마

 

 

안중근은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하얼빈 의거 이후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뤼순에서의 복역 중에도 동양평화론을 저술했다고 하니 참으로 그 정신력이 존경스럽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완성하기 위해 재판부에 사형 집행 일자를 한 달 가량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그 대가로 공소권 청구를 포기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는 약속과 달리 3월 26일에 사형을 집행하였다.

 

 

김구 선생은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며 “앎은 어렵고 행동은 쉽다(지난행이)”라는 휘호를 남겼다.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을 통해 아는 단계에 다다르면 실천은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얼핏 생각해보면 실천이 머리로 아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지만, 선생이 말하는 앎은 단순한 이해 그 이상의 뜻이리라.

마지막에는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다수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책갈피도 직접 스탬프를 찍어서 제작하는 책갈피도 몇 개 챙겼다.

 

 

 

 

기념관 앞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이 있다.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를 실물 크기로 형상화한 동상이 서있다. 그 맞은편에는 한국, 중국, 필리핀 출신 소녀들의 동상이 손을 맞잡고 있다. 각자 동, 서, 북쪽을 바라보고 있고 누구나 소녀들과 손을 맞잡고 설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러한 제작 취지에 맞게 기림비의 명칭은 “정의를 위한 연대”이다. 또한 이 기림비가 세워진 곳은 조선신궁(일제가 남산에 세운 신사)의 터였다고 한다.

 

 

 

 

기림비 동상이 있는 곳은 삼순이 계단 맨 꼭대기이기도 하다. 계단을 내려와 남산둘레길을 여유롭게 거닐다 보니 목면산방(목멱산-남산의 옛 이름)에 도착했다. 이곳은 미슐랭 비빔밥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둘레길 중간 명당에서 위치한 남산도식후경으로 가려했으나 이날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다. 본래 남산도식후경 자리에 목면산방이 있다가 작년에 이전했다. 임대료 때문이라고 한다. 둘 다 비빔밥을 메인으로 하는 컨셉의 식당인데 평들이 나쁘지 않았다.

애매한 시간에 갔는데도 손님들이 은근 많았다. 내부가 깔끔하고 나쁘지 않지만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남산도식후경이 더 나을 것 같다. 비빔밥 종류는 꽤나 여러 가지인데 기본 세팅에 약간의 차이만 둔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이드 메뉴와 잔 단위의 술도 판다. 패스트푸드 수준으로 거의 주문 즉시 나오는데, 정갈하다. 

 

 

 

 

나는 비빔밥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아주 맛있게, 게 눈 감추듯 먹었다. 배가 고팠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냥 비빔밥 맛이다. 굳이 찾아가서 먹을 정도로 특별한건 없다. 다만 합리적 가격은 장점이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다시 걸을 차례다. 이렇게나 예쁜 안내가 다음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다.

 

 

 

 

바로 위안부 기억의 터이다. 이 곳은 통감관저(이완용이 한일강제합병조약을 체결한 곳)가 있던 터이다.

 

 

 

 

현재는 코로나 환자 위한 생활치료센터로 운영 중인 서울유스호스텔을 지나 쭉 걷다보면 남산골공원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나온다.
남산골공원은 꽤나 널찍하다. 안에 한옥마을과 국악당도 자리하고 있는데 우리는 국악당 내 카페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좋다. 우리가 갔을 때는 지하에서 진행 중인 국악 공연도 무료로 즐길 수 있었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시설이 깔끔하고 운치가 넘친다. 그렇다고 단순히 분위기만 좋은 인스타용 카페가 아니라 커피도 맛있다. 다른 멤버들이 주문한 독특한 차도 뺏어 먹어봤는데 역시나 괜찮았다.

 

 

 

 

민지의 파주여행, 빽도의 수험일상, 한소리의 직장생활 등 각자의 근황(사실 워낙 자주 보는 편이지만)을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와 빽도는 조만간 떠날 구례-하동 여행에 대해서도 잠깐 상의했다. 우리는 4시 반쯤 일어났고, 나는 한솔이가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과 함께 빌려준 에코백과 민지의 엽서선물까지 주섬주섬 챙겼다.

 

 

 

 

각각의 포인트들이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운 동선이었다. 광복절에 의미 있는 장소들을 다녀왔다는 뿌듯함도 내심 있었으나 마스크가 일상이 된 요즘 가까운 지인들과 산책하는 즐거움이 컸던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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