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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3-25 구례-하동여행 Day1

밖으로/언제나 여행

by 황제코뿔소 2020. 11. 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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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 현식당 피아골 사성암 피게농 게스트하우스

우리 여행의 시작은 광한루였다. <춘향전>의 무대로 잘 알려진 이 공간은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가 있는 동안 광통루라는 이름으로 맨 처음 지어졌다. 이후 몇 번의 다시 짓기를 거쳐 지금의 대형 정원이 되었다. 광한루가 얼핏 보기엔 휑한 공원 같지만 엄연히 보물 281호에 해당하는 문화재이다. 견우와 직녀,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이어주는 오작교도 거닐어 볼 수 있다. 참고로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자연과 어우러져 쉴 수 있도록 경치 좋은 곳에 지은 건물을 뜻한다.

본격적인 여행의 첫 일정이었기 때문에 들뜬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고 광한루에 들어갔다. 역시나 내게는 광한루가 기대할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대학생 때 내일로 여행을 하면서 여기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나 이번 여행에서나 광한루는 나에게 그다지 매력 이 없었다. 오작교와 광한루를 중심으로 한 인공정원이 주변 경치를 돋운다고는 하지만 공간 자체가 워낙 뚫려 있는 편이라 슬쩍만 봐도 기대감이 떨어진다. 폭염도 한몫했다. 매표소에서 장우산을 무상으로 대여하고 있었지만 편히 산책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더위였다. 출입구 쪽에 구성되어 있는 다수의 기념품 점포들은 다소 어수선하다. 여러모로 이곳을 굳이 찾아 올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행 동선에 남원이 있다면 잠깐 들려서 쉬었다 가는 정도?

우리가 광한루에 온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여행 첫째 날의 최종 목적지인 구례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점심시간에 딱 남원을 통과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점심 메뉴는 남원의 대표 음식인 추어탕이다. 아니나 다를까 광한루 주변에는 추어탕 식당들이 즐비한데 남원 전체에서 가장 유명하고 평이 좋은 추어탕 집이 하필 광한루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름은 현식당. 리뷰가 좋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친절하고 맛이 좋다. 특히 추어탕에 듬뿍 들어가 있는 열무시래기가 질기지 않으면서 국물과 너무 잘 어울렸다. 게다가 현식당은 인심까지 끝내준다. 이모님께서 주기적으로 추어탕으로 가득 찬 냄비를 들고 돌아다니시며 리필을 해주신다. 추어탕 뚝배기뿐만 아니라 반찬도 부탁드리기도 전에 리필을 해주시는 정도이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나오는 길에 진공포장 팩 택배 주문까지 했다. 식구들이 빠짐없이 추어탕을 좋아하는 터라 우리 집에 보내고 펭귄 집에도 보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서 추어탕 10개는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런데 포장 주문할 때 진공 팩의 내용물이 식당에서 먹은 것과 똑같은 거라고 하셨는데 왠지 더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성공적인 첫 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서 피아골로 향했다. 우리 숙소가 자리한 곳이다. 이름이 괜스레 섬뜩하여 찾아보니 일전에 이곳에서 곡물 중 하나인 피를 많이 지배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피아골을 구불구불 꽤나 올라가다보면 우리가 묶었던 숙소가 나온다.

사실 우리의 숙소는 피아골만큼이나 아니 피아골보다 그 이름이 더 특이하다. 피게농 게스트하우스이다. 피게농은 피아골의 게으른 농부들의 줄임말이라고 우리를 맞이해주신 분이 설명해주셨다. 더 이상 농사는 짓지 않으시고 게스트하우스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계신다고 한다. 출입구에 걸려있는 농부들사진은 성인 남성 셋인데 숙소에 계시던 분들은 여성 세 분이셨다.

 

우리는 에어비엔비로 예약을 해서 갔다. 숙소 도착 시간을 꼭 맞춰 달라고 신신당부에 따라서 구례에 도착할 때쯤 미리 연락도 드리고 도착 시간을 맞춰갔는데 아직 입실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최소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숙소에 누워 한숨 돌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달갑진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대안이 있었다. 바로 피아골 계곡이었다.

물은 송사리들이 보일 정도로 맑았고 시원함 그 자체였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우리 숙소 맞은편에 있는 피아골 오토캠핑장을 찾은 사람들이 소수 있었지만 매우 한적한 편이었다. 피아골 초입에서 꽤나 올라와야 하는 위치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이러한 계곡에 오면 유독 천진난만해지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유치한 물장난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허리까지 물이 찰 정도로 깊은 포인트도 있어서 수영을 하고 물수제비도 띄우며 시간을 보냈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계곡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을 때이다. 푸르른 하늘과 뭉개진 구름 그리고 계곡의 시원한 촉감에 청량한 물소리까지, 그야말로 자연에 파묻힌 순간이었다.

물놀이를 마무리하고 숙소에 들어간 우리는 깜짝 놀랐다. 호텔 부럽지 않은 청결함과 단정함 때문이었다. 창틀에조차 먼지가 없고 욕실도 너무나 깔끔했다. 다락방 또한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화룡점정으로 방과 연결된 베란다는 그 뷰가 어마어마했다.

우리는 여유를 만끽하며 민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미 블로그에 여러 번 등장한 바 있는 민재와는 내가 빽도와 함께 과학생회를 운영할 때 집행부원으로 들어오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후 등산모임도 같이 만들고 쌓은 추억이 많다. 내가 무균실에서 항암을 할 당시 면회실에 눈물을 펑펑 쏟아내던 마음 따뜻한 녀석이다. 현재는 법무부 소속 공무원인데 우리가 여행을 떠난 8월까지만 해도 여수에서 발령근무 중이었다. 연수와도 가까운 사이인 민재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눈만 잠깐 붙인 후에 바로 달려왔다.

무알콜 하이트는 너무 맛없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민재까지 모여서 오늘 오후 일정의 멤버가 드디어 다 모였다. 베란다에서 바로 맥주를 깠다. 앞으로 최소 몇 년은 금주해야만 하는 나는 운전을 해야 하는 민재와 함께 무알콜 맥주를 마셨지만 멋진 경치와 좋은 사람들만으로도 취하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다음 행선지인 사성암으로 향했다. 서울에서는 그리고 혼자서는 즐기기 힘든 고즈넉한 시골길이 우리를 반겼다. 길지 않은 이동 시간에 실없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다가 어느새 각자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기도 해가며 사성암에 도착했다.

사성암은 기암절벽에 기대고 있는 그 모습이 참으로 독특하다.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한 암자라고 하여 사성암이라고 한다. 건물 내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은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부슬비를 내리는 구름들 사이로 쨍쨍한 햇볕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깎아지른 절벽 위의 사성암을 더 신비롭게 만들었다.

사성암의 하이라이트는 절 앞에 펼쳐진 구례 전경이다. 사성암이 자리하고 있는 오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그 경치는 가히 장관이다. 내가 본 풍경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이다. 사성암은 정말 강력 추천한다.

주차장이 그리 넓지 않고 보통 셔틀버스를 이용한다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다른 관광객들이 거의 없어서 어렵지 않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저녁을 해결하러 구례시장으로 갔으나 웬만한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근처에 보이던 족발과 치킨을 사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배터지게 먹으며 회포를 풀었다. 10시경 여수로 떠나는 민재를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 배웅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찍 잠에 들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2020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봐야했기 때문이다. 알차면서도 여유로웠던 여행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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