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여름호 특집에서 조대한의 “겹쳐진 세계에서 분투하는 시인들”에서 문보영이라는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문보영의 『배틀그라운드-원』이라는 시가 “가상과 현실 세계의 겹침”의 한 예로 언급된다. 한동안 엄청난 열풍이었던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나는 당시까지도 직접 플레이해 본 적이 없었지만 어떠한 게임인지는 알고 있었다. 시의 배경이 서바이벌 슈팅 게임인데 이러한 ‘컨셉’의 시를 모아서 아예 시집을 하나 출판했다는 사실에 참으로 독창적인 접근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선명하다.
겨울호와 작별할 때가 다 되어서야 놓쳐버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시 파트를 펼쳐 들었을 때, 문보영이라는 이름이 눈에 선뜻 들어온 것은 내가 최근 모바일 배틀그라운드에 빠졌기 때문도 있겠지만 바로 클럽창비 1장 당시에 새겨진 그 기억 때문이다. 겨울호에 수록된 시들을 모두, 여러 번 읽어보았지만 문보영의 시에서 더 오래 머물러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번 호에서도 시는 어려웠다. 난해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창작자의 의도를 떠나 나만의 감정과 해석에 집중해보겠다는 용감한 태도를 버린 지는 꽤 되었다.
그런 내가 문보영의 시에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나의 답은 “줄거리”였다. 분명 은유의 사용이나 형식의 측면에서 여느 시와 공유되는 특성이 발견되지만 그 안에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 나를 멈춰 세운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류’의 시가 반드시 ‘좋은 시’라고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일까? 나의 답은 “잠시 멈춤”이다. 나는 시를 읽으며 앞으로 전진이 아니라 잠시 멈춤을 갈구하고 있었다. 스토리가 필연적으로 사유를 방해할 리도, 시라는 분야가 반드시 난해함을 내재하고 있을 리도 없다. 다만 나는 시에게 쉽사리 내딛지 않고 쉬이 보지 않는 연습의 기회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오래 전 포기했다는 해석의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다시 제자리다.
*내가 접한 문보영의 작품이라고는 2020 여름호와 겨울호에 실린 시가 다이기에 ‘문보영의 시’에 대한 감상이라고 보기에는 힘들 듯 싶다.
[2020 겨울] 8주차: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기록 (0) | 2021.05.13 |
---|---|
[2020 겨울] 7주차: Deus Ex Machina (0) | 2021.04.12 |
[2020 겨울] 5주차: 동화 같은 이야기 (2) | 2021.03.23 |
[2020 겨울] 4주차: freedom together (0) | 2021.03.21 |
[2020 겨울] 3주차: 꿈틀거림 (2) | 2021.03.1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