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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겨울] 7주차: Deus Ex Machina

Library/Club 창작과비평

by 펭펭's 코코 2021. 4. 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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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를 통해 문학에 겨우 한발짝 다가서고 있는 나로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용어를 이번 문학초점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해당 개념이 언급된 맥락과 "조력이 그때그때 짜인 각본처럼 등장하고 사건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풀리기 때문에, 갈등을 손쉽게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김태선 평론가의 짧은 설명으로 해당 용어가 무슨 뜻인지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로는 'god from the machine', 한글로는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으로 번역된다. 본 용어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연극에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발단부터 절정까지는 평범한 인간의 생활에 맞추어 진행되다가 기중기같은 무대 장치를 타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고 소개하는 배우가 뜬금없이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 전개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갑자기 등장하여 사건을 모두 해결하는 이러한 요소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다. 

이러한 요소가 현대 작품에서 긍정적인,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줄지도 모르겠다. 오연경 평론가가 『더 셜리 클럽』에서 해당 측면을 유머로 느낀 것처럼 말이다. 작위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부정적으로 느껴질 경향이 크기 때문에 작품 속 상황과 요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해야만 유의미한 개념으로 보인다.

 

프랑스 3대 극작가 중 한명인 피에르 코르네유의 <안드로메다>를 공연하는 극장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등장인물들이 신이 되기 위해 승천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현실은 결코 "매끄럽게 걸림돌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의 개체가 연루될 수 밖에 없는 "복수의 과정"(『더 셜리 클럽』)이나 "치유의 과정"(만해문학상 『이제야 언니에게』심사평, 백낙청)이 필연적으로 그럴 것이며 "조금 성숙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성장하지는 않은"(『복자에게』) 개인의 성장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20대의 끝자락에서 암을 진단받기 전까지 나는 하고자 하는 일들은 대부분 성취했다. 이후 나는 누구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의 복잡성과 임의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일까. 나로서는 작품이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순탄하게 그려지는 작품에는 쉬이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반면 "단순하지 않은 감정의 복합물"을 짚어내고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단순히 "낭만화"하거나 주인공이 놓여진 환경에 쉽사리 동화되지 않는 작품이 더 신뢰가 가고 몰입된다. 문학을 손에 드는 이유는 취향마다 혹은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더 셜리 클럽』보다는 김금희 작가의 『복자에게』가 읽어보고 싶다. "각자의 개성이나 삶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공유하고 서로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이 작품에서 어떻게 녹아 있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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