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포스팅했던 나의 인생드라마 순위가 바뀌었다. 단언코 <괴물>은 내가 손꼽는 최고의 한국 드라마다. <비밀의 숲1>과 비등할 정도다. 정말 엄청나다.
얼마만인가.. 이정도 수준의 한국 드라마를 만난 지가.. 넷플릭스나 왓챠 등으로 정주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편 한편 강제로 아껴가며 봐야하고, 그 덕에 다음 주가 기다려지는 그 설렘..
이 드라마가 시작할 때 <시지프스>, <빈센조> 도 같이 스타트를 끊었는데 이 둘은 정말 볼 것이 못된다.. <펜트하우스2>도 그즈음 다시 막장의 막을 올렸지만 펜하는 회자되고 화제는 될 지언정 절대 명작의 반열에 낄 수 없는 드라마, 딱 그 정도이다.
<괴물>은 나만 알고 싶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명작이다. 넷플릭스에서 오늘(일)부터 풀리면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그 진가를 알게 될 수밖에 없을 테지만 말이다.
간략히 감상 포인트를 남겨본다.
좋은 각본은 명작의 필요조건이다. 좋은 각본만으로 명작이 탄생할 순 없지만 명작의 각본이 훌륭하지 않을 수는 없다. <괴물>도 마찬가지다. 상당히 촘촘하다.
스릴러는 미스테리와 서스펜스로 구성된다. 쉽게 말해 미스테리는 "범인이 누구일까?" 이고, 서스펜스는 "주인공이 어떻게 될까? 할까?" 이다. <괴물>은 이 두 요소를 끝까지 잘 밀고 나간다. 마지막까지 힘이 실려있다.
주요 등장인물들 간에 어느 정도의 거리가 꾸준히 유지된다. 주인공들이 너무 끈끈해져서 연인이 된다거나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다거나 하지 않는다. 감정은 존재하지만 서로에게 그 감정을 쏟느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괴물>은 이 '질척거림'을 대놓고 언급한다.
이동식(신하균)과 한주원(여진구)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쿨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둘 사이의 긴장감은 이 둘 다 경찰로서 같은 사건을 쫓고 있다는 점에서 꽤나 중요하다.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두 주인공이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를 두는, 다소 전형적인 긴장감이 아니다. <괴물>에서는 한 경찰이 다른 경찰을 범인으로 의심하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 '합리적인 의심'을 끊임없이 주고 받으면서 어느새 함께 사건의 실체에 다가선다.
'괴물'이라하면 니체의 명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을 두고 등장인물이 고민하는 작품들은 너무나 많다. <괴물>에서도 절차적 합법성을 확보할 것인지의 여부는 분명 다루어지지만 거기에 잡아 먹히지 않는다. 그 부분을 가지고 너무 질질 끌었다면 이야기의 힘이 빠졌을 것이다. 해당 부분을 주인공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마지막화까지 미루어두고 사건 해결과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것은 연출과 각본 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해당 분을 책임지는 형태로 결국 잊지 않고 다룬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괴물>에서 악인은 명확하지만 그게 여럿인데다가 서로가 엉켜있다. 등장인물들 간의 엉킴이 너무 작위적이면 개연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괴물>은 그럴 듯하고 그런 부분을 잘 설득한다. 그런 엉킴이 풀려가면서 피가 물보다 진한 경우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탁월하게 그려낸다.
이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와도 관련있다. 등장인물의 엄마 혹은 아빠가 저지른 일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을 잘 드러내야 하는데 훌륭하게 소화한다. 특히 한주원이 충격적인 사실을 직면했을 때 비를 맞으며 이성의 끈을 놓는 장면은 여진구라는 배우를 정말 다시 보게 만든다. 뭐, 신하균의 연기는 그냥 미쳤다.. 능글맞는 이동식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특히 눈동자 밑부분이 뻘겋게 되면서 감정을 억누르는 그 연기는 정말 어떻게 하는 것인지 넋을 잃게 된다.
ost도 인상적이다. 최백호의 "The Night"는 드라마 ost로 낯선 분위기이지만 마치 한 맺힌 이동식의 내면의 울부짖음을 표현한 것 같아서 금세 작품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비비의 "Timeless"는 감각적이다. 매 화의 끝을 장식하는 엔딩 곡으로 적절하다. 제일 많이 듣고 있는 곡은 하근영&김예솔의 "괴물, 누구인가"이다. 슬프지만 알아야만하는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너무 애정하게 된 작품이라 제대로 포스팅을 남기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평소에 리뷰하듯이 쓰면 한도 끝도 없이 쓸 것 같다. 간단하게 몇 자만 쓰려던 것이 이미 꽤 길어졌지만, 마지막화를 본방으로 보고 난 지금의 내 허탈하고 아쉬운 마음에 비하면 택도 없다.
이동식, 한주원! 잘 먹고 잘 자고 똥 잘 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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