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창비클럽 미션은 <대화>편이었다. 이남주 교수와 이철희, 채이배 의원이 20대 국회를 평가하고 다수의 정치 현안에 대해 나눈 대화가 수록되어 있었다. 정치학을 전공해서라기보다 정치, 시사에 본래 관심이 많은 터라 쉽게 읽히는 내용들이었다. 협치와 개헌, 패스트트랙을 통한 개혁입법, 선거법 개정, SNS와 청년정치, 4·15 총선 등 핵심 화두를 균형 잡히게 다루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균형은 내용의 풍성함 외에도 여야 양쪽의 입장이 모두 다루어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비록 편집된 글을 통해 접하는 대화였지만 사회자의 진행이 돋보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협치의 실패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서 “탄핵소추안에 국회의원 234명이 찬성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초당적인 협력인데 이러한 결속력이 왜 느슨하게라도 이어지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은 협치가 제도적, 정서적으로 쉽지 않은 한국 정치 지형에서 협치를 실질적으로 타진해볼 수 있었던 시기와 계기를 구체적으로 호명하고 있다.
또한 사회자는 개헌과 관련하여 “촛불혁명의 요구를 제도화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제기된 과제는 유권자들의 지향이 다원화됨에 따라 소선거구제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당제적 구조가 출현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의석분포에 더 잘 반영되고 이들의 협치가 가능해지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의회 내에서 과도하게 대표되어 온 수구기득권을 끌어내리는 것이 한국정치가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다.
다만 나는 <대화> 내내 언급되는 ‘촛불혁명’이라는 단어가 걸렸다. 나 또한 그 당시 정국 때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고 단순한 정권교체 이상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그러나 ‘촛불집회’와 탄핵 이후 우리 삶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아무리 변화를 일상적 차원에서 실감하기에는 시차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혁명적’으로 개선된 부문이 있는가? 인류 역사에서 혁명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조건으로 하는 ‘사건’이었는가를 상기해야겠지만 그간의 ‘적폐’를 근본적으로 갈아엎는다는 의미에서 과연 촛불이 혁명이라 할 수 있는지 평소부터 의문이었다. 마치 천재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쓰이는 느낌이랄까. 현재의 틀 속에서 실현가능한 변화의 폭은 매우 작으며 그 속도 또한 점진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이야 많지만 기대하는 바는 그리 크지 않다. 그냥 아주 작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국회의원 배지를 더 단다고 해서 이 정치를 바꿀 자신이 없다며 진작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신뢰가 가는 의원 중 한명이었는데 안타깝다) 본인의 말처럼 국회 구성원 몇 명이 교체가 우리 삶에, 한국 정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정치불신이다. 지금처럼 내 나름의 방법으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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