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클럽창비의 미션은 <문학초점>에 소개된 6권과 <촌평>에 소개된 10권 중 가장 읽고 싶은 1권에 대해 글을 남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책 16권에 관한 소개글이자 <문학초점>의 경우 시인 및 문학평론가들의 대화 형식이라 이때까지의 미션들 중 읽을 양이 가장 많았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신간 소설과 시집 외에도 세계 진보정당의 운동사부터 근본주의 모르몬교를 맹신하는 가족 공동체로부터 탈출하여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의 자서전까지, 다채로운 내용의 책들을 접할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백혈병을 진단 받은 혈액암 환자로서 「암 정복 연대기: 암과 싸운 과학자들」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많은 책들 속에서 김효순 저자의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일본인 전범을 개조한 푸순의 기적」이 여러 측면에서 단연 돋보였다. 우선, 그 내용이 상당히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책은 중국 푸순과 타이위안의 전범관리소로 이송되었던 전범들과 그들이 귀국하여 만든 단체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다른 전승국의 일본인 전범재판과 달리 사형수도 무기형도 없었다고 한다. 본 저작에 대한 촌평을 작성한 심아정 박사는 “제재나 복수로는 증오의 연쇄를 끊을 수 없다”는 당시 전범 관리 총책임자였던 저우 언라이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일본 전범들에 대한 중국의 자발적인 예우와 관대한 역사 청산 방식은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이러한 생소한 역사가 해당 전범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본 책이 나의 관심을 끈 또 다른 이유는 가해자에 주목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악의 평범성 때문이든 전쟁의 광기 때문이든 일본 전범들은 동아시아에서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 가해자들이 자기반성의 단계에 다다르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고 지향되어야할 역사의 방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적으로 들린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으려는 현실을 우리는 매일 목도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아베정부를 비롯한 일본 극우세력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사회통합의 이름으로 전두환을 사면했지만 29만원밖에 없고 치매에 걸렸다는 그는 골프를 치러 다닐 뿐, 여전히 광주시민들과 우리 역사 앞에 머리 숙이지 않았다. 또한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은 가해자에게 반성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를 상기시킨다. 따라서 역사적 과오를 자신의 몸에 직접 묻힌 전범들이 성찰에 이르는 구체적인 과정은 분명 보편적인 의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학문을 업으로 삼고자 했던 사람으로서 저자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촌평은 해당 저작이 전범을 교육하는 관리소 직원들, 일본인 전범들이 귀국 후에 만든 단체와 후속 세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잊혀질 수 있는 그리고 사라질 수 있는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연구의 가치는 실로 귀중하다. 거대한 연구 질문과 담론, 과도한 의미 부여에 휩쓸리기 쉬운 학문의 세계에서는 특히 그렇다. 또한 방대한 사료와 수기를 자료로 한 이러한 질적연구는 정량화된 데이터와 통계기법에 의존하는 연구들이 대체할 수 없는 학문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 <액트 오브 킬링>(2012)은 인도네시아에서 1965년 쿠테타 당시 ‘반공’을 명분으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의 학살을 주도한 ‘안와르 콩고’를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 호화롭게 살고 있는 그에게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온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도 하며 자랑스럽게 살인의 재연에 몰두한다. 이에 이어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침묵의 시선>(2014)을 통해 동일한 사건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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