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도 뜨거운 여름이었다. ‘광주역사기행’을 위한 사전답사로 그곳에 내려갔을 때에는. 우리는 망월동 묘지를 둘러보며 동선을 확인했고 틈틈이 공부했던 자료집을 들춰보며 각자 맡은 조원들 앞에서 하게 될 해설을 연습했다. 금남로와 전남도청을 비롯해 우리가 방문할 광주 시내 주요 장소들을 들려보고 단체 도시락도 미리 주문했다. 터미널 앞에 있는 해장국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남자들은 렌트한 스타렉스 안에서 잠을 청했다. 그로부터 몇 주후 여러 학과의 우리 학교 학생들 60여명과 함께 1박 2일로 광주에 다녀왔다.
역사기행은 내가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내건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함께했던 학생들에게 그 ‘행사’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남아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게는 정말 중요한 기억이다. 어쩌면 과학생회 집행부들과 함께 무작정 떠났던 2012년부터 준비한 ‘야심찬 프로젝트’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학생회장이라고 믿고 함께 광주를 찾아준 아이들에게 나는 모범적인 안내자가 아니었다. 나 또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맨땅에 헤딩을 교훈삼아 사회대 학생회 집행부로 만난 친구들과는 현장에 내려가기 전에 오랫동안 그리고 함께 공부하고 준비했다. 그 어떠한 단체와도 엮이는 것 없이 우리의 힘으로만 진행했기에 많은 학생들이 동참해준 것도 있었다. ‘광주역사기행’은 내가 경험한 가장 뜻 깊은 의기투합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며, '나서면 죽는다'가 아니라 '나서서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쳤다.. 5·18항쟁을 경험한 뒤 국민들은 무엇보다도 '국가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품었다. 국가가 폭력과 학살의 주체일 수 있고, 국민들이 국가에 맡긴 총구가 역으로 국민들을 겨눌 수 있음을 인식했다. 군인들이 군복을 입은 채로 권력을 탐내 정치에 나설 때 국민들의 생존과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지는지 확인했다. (p.389-390)
동시에 광주는 내게 역사의 쓸모를 가르쳐줬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불행과 유무형의 형태로 존재하는 불합리성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유사한 원리로 발생해왔으며 그 뿌리를 공유한다는 것, 나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안녕은 깊이 결부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모두를 감싸고 있는 역사라는 줄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또한 나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살겠다는 서슬 퍼런 각오를 매일같이 다지며 살고 있진 않지만 최소한 역사 속에서 왜곡을 꾀하거나 ‘지겹다’며 피로감을 찾는 태도에 대한 단호한 거부를 배웠기에 광주는 나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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