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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각자의 위치에서 (D+218)

Diary/투병일기(AML)

by 황제코뿔소 2020. 7. 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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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검사 결과에 따르면 골수에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단다. 그래서인지 주치의인 김희제 교수는 호중구가 1000이 안 되는 혈액검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근래에 컨디션이 불안정해지면서 다시금 매주 병원에 가다가 간만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혈액검사보다 골수검사가 훨씬 정밀하고 중요한 검사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상이 없다는 골수검사 결과에 상응하는 조치로 고려된다. 게다가 혈액수치의 경우 조혈모세포(골수) 이식 이후에 길게는 몇 년까지도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하니 내 혈액수치 또한 그렇게 특수한 상황이 아닌 듯하다. 블라스트가 검출된 것도 아니고 혈소판, 적혈구 모두 수혈을 받을 정도로 낮은 편이 아니기도 했다.

문제는 그렇게 2주 만에 방문한 이틀 전 외래 진료에서 검사한 혈액수치가 더 떨어졌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번에도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듯 2주 후에 보자고 할 뿐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진료실에 들어가 앉자마자 한숨을 내쉬는 나에게 골수가 원래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평소의 딱딱함 때문이었을까? 응원의 어조로 주치의가 툭 던진 말에 엄마는 그 자리에서 울컥하셨다. 나와 엄마가 진료 받으러 오면 저기압이 된다(아니 백혈병이라는데 두둥실 춤을 추랴?)며 비록 못되게 굴긴 했지만 환자와 보호자인 나와 엄마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의과대학 교수와 의사는 엄연히 다르다. 둘 다 잘하기는 힘든 것 같다.

주치의의 (삐딱한) 응원으로 나름 훈훈하게 끝나는가 싶었던 짧은 진료는 혼쭐로 마무리 되었다. 내가 오징어, 새우는 여전히 먹으면 안 되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호중구가 더 떨어져서 500을 겨우 넘는 상황에서 기존에도 제한되던 식단 얘기를 꺼냈으니 사실 무리수였다.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단호한 멘트를 뒤로 하고 결국 혼이 났다며 엄마와 나는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키득거렸다. 우리는 진료실을 나와서 이렇게 자주 웃는다.

혈액내과만 보면 되었기에 병원에서 머문 시간이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균실에서 같이 지내던 환우들한테 연락해봤다. 연락처를 아는 사람은 두 명 뿐이다. 한 명은 청와대 경호처 취직을 앞두고 쓰러진 계기로 자신이 백혈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 청년이다. 내가 무균실에서 보낸 시간 중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었던 2차 항암 때 만나게 되었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긍정 에너지와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던 친구였다. 침상을 비워야하는 청소 시간에 휴게실에서 얘기를 나누며 서로 응원하던 우리는 그 이후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올해 초에 카톡을 나눌 때까지만 하더라도 별 다른 숙주반응도 없고 혈액수치도 정상치까지 올라왔다고 안부를 전했었다. 그런데 연락이 없던 몇 달 동안 내내 혈소판 수치가 수혈을 받아야 할 정도에 근접하게 밑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한 명은 대전 삼촌. 나는 무균실에서 만난 아재들을 다 삼촌이라 불렀다. 이 삼촌은 나에게 종종 전화를 주시는데 최근에 내가 받지 못한 상황이라 이번엔 내가 전화를 걸었다. 난 카톡으로 전화를 연결하는 습관이 있어서 삼촌을 검색했다. 고등학생이라는 막내아들과 찍은 프사가 나를 반겼다. 뭉클했다. 전화를 걸자마자 연결됐다. 목소리가 밝았다. 말도 여전히 많은 삼촌은 숙주반응으로 고생 중이었다. 구강, 안구 숙주도 거슬리지만 폐 숙주가 참으로 괴롭다고 했다. 약간의 경사로만 있어도 숨이 가프고 헐떡임 때문에 걷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폐로 숙주반응이 오면 100%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호흡기내과 숙주 전문의가 설명했다는 것이다. 재발 확률을 조금이라도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식받을 당시 토끼혈청을 쓰지 않은 주치의의 결정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숙주반응을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삼촌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했지만 사실 삼촌은 모범환자가 아니다. 항암 시기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하시던 엄마가 옆에서 술 마시면 어떡하냐는 통화 내용을 들으시고 고개를 절레절레..

그렇게 2주 만에 찾아간 외래 진료에서 혈액검사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힘을 받고 왔다. 김희제 교수의 응원 같지 않은 응원도 있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싸우고 전우들과 오랜만에 안부를 물은 시간이 내게 정말 힘이 되었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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