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크만을 뺐다. 1년 3개월 동안 오른쪽 가슴팍에 박혀있던 관이 드디어 사라진 것이다. 염증기가 살짝 있는데다가 외래 진료 때 마다 수혈이나 면역증강제를 맞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히크만을 떼도 되는 때라고 감염내과 교수님이 판단을 하신 것이다. 나의 주치의는 혈액내과의 김희제 교수이지만 히크만은 엄연히 감염내과 교수님 소관이란다. 무균실에서 퇴원할 때도 주치의 외에도 감염내과 컨펌이 있어야한다.
백혈병의 핵심 담당과는 혈액내과이지만 다른 과들도 함께 진료를 본다. 예를 들어, 조혈모세포(골수) 이식을 받기 전에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에 관련 과 처방을 받는다. 이식 후에는 환자들마다 상이하게 오는 숙주반응에 따라 혈액내과 외에 다른 과 진료를 같이 봐야한다. 나의 경우에는 한동안 외래 진료를 갈 때마다 피부과도 무조건 방문했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감염내과. 이번 코로나 때문에 더욱 주목받고 있는 과이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일 당시 김희제 교수는 “요즘 감염내과가 아주 떠받들어지잖아” 하면서 특유의 비아냥스러움을 시전한 바 있다. 하여간 베베 꼬여가지고.
여하튼 그렇게 나의 중심정맥에 연결되어 있던 히크만 카테터는 제거되었다. 삽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혈관조영실에서 뺐다. 다만 이번에는 수면마취가 아니라 국소마취였다. 염증 때문에 빨갛게 살짝 부어있던 터라 유독 아팠다. 시술해주시는 분이 마취 전부터 “아이고 마취하실 때 많이 아프시겠는데..”, “정말 많이 아프실꺼에요.”라고 하면서 겁을 무진장 줬다. 그런데 이런 말이 은근히 효과적이다. 고통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비록 아팠지만 앞서서 지레 먹은 겁 때문에 “어라? 이게 다야?”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골수검사 때도 그래서 말하면서 검사해달라고 꼭 말하곤 한다.
히크만 카테터가 빠지지 않도록 내 가슴팍에 걸쳐서 고정해두었던 핀이 있는데 그것까지 빼야하기 때문에 약간의 절개가 필요하다고 사전에 설명을 받았다. 사실 제거한지 몇 주가 지난 지금은 실밥도 다 제거한 상태이다. 제거 부위에는 조그마한 딱지만 아직 자리해있다. 본래 내 성격 같으면 히크만을 챙겨올 법도 했지만 두고 왔다. 뭐가 묻어있던 것도 아닌데 가져오기가 싫었다. 좋은 기억이 떠오를 리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배꼽을 지나 아랫배까지 닿던 히크만을 넣어 다니던 히크만 주머니도 이제는 안녕~
하나하나 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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