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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괜찮아도 괜찮아 (D+287)

Diary/투병일기(AML)

by 황제코뿔소 2020. 9. 1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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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검사가 오전 8시 10분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조금 늦게 도착했다. 출근시간대라 여유를 두고 나와야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탓이었다. 골수검사를 앞둔 며칠은 꼭 밤에 잠을 설친다. 매번 검사받는 부위인 오른쪽 후면 골반은 곧 주사바늘과 검사관이 뚫고 들어올 것을 아는 것인지 신기하게도 욱신거린다.

골수검사를 받고 나면 최소 2시간을 침상에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기 때문에 혈액검사를 위한 채혈까지 마친 상태로 대기해야만 한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골수검사는 혈액병동 내에 있는 주사실에서 진행된다. 무균실에서 항암을 받는 동안에는 환자의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 분들이 무균실로 올라와서 진행하기도 한다. 내가 3차 항암 때 그랬었다.

내가 첫 번째 순서였는지 주사실 D구역(골수검사 대상 환자들을 위한 침상 구역) 1번 침대를 배정받았다. 2번 침대 분이 먼저 검사를 받고 계셨다. 다행히 나로 인해 이후 시간대 검사가 늦춰지진 않은 상황이었다. 골수검사를 받을 때 엄습하는 공포와 통증은 익숙해지지 않는 수준이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아니라면 보호자들은 주사실 출입이 금지되어서 주사실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 부위 지혈을 위해 누워 있는 동안 통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모래주머니를 허리 쪽에 깔고 누워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세가 상당히 불편해지는 탓이 크다.

이번에는 지혈이 조금 늦어져서 30분을 더 누워 있었다. 혈소판 수치가 되레 떨어진 탓일까. 누워있는 동안 혈액검사 결과가 떴다. 모든 정보가 다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결과는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혈소판과 호중구 수치가 조금 떨어져서 좋게 나왔다고 할 순 없지만 이 정도의 등락에는 이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혈액검사에는 평소에는 못보던 Immature Reticulocyte Fraction(IRF) 라는 항목이 떠있었다. "Immature"가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 비정상성을 의미하고, 게다가 참고치를 살짝 오버해서 검출된 것으로 떠있어서 순간 걱정이 확 들었다. 주사실 밖에서 대기 중이시던 엄마도 대번에 이 수치부터 말씀하시며 걱정에 떨고 계셨다.

나는 검색해보니 Reticulocyte는 망상적혈구수를 의미하고, 대한진단검사의학회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골수이식, 철, 엽산 또는 비타민 B12 치료 이후에 망상적혈구수가 증가한다면 골수의 적혈구생성능이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고 괜찮을 것 같다고 엄마를 타일렀다. 무엇보다 주치의에게 물어보니 그런건 언제 또 검색해봤냐는 식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하나도 걱정 안해도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환자는 확인할 수 없는 면역수치가 따로 있다. 주치의인 김희제 교수는 나의 면역수치가 여전히 낮은 편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 요즘 특히나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관리만 하고 지내라고 당부했다. 그 밖에도 내가 준비해둔 질문들에도 오늘따라 상당히 친절히 답변해줬다. 좋은 일 있나.. 

오늘은 오후에 예정된 폐기능검사와 감염내과 외래 외에도 예정에 없던 2개의 과에서 추가적으로 진료 받았다. 예약도 없이 당일에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니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수준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다음 정기 골수검사는 3개월 후인 11월 말, 12월 초에나 잡힐 것이다. 그때까지는 골수검사를 잊고 지낼 수 있겠다. 다만 이번에 받은 검사 결과가 잘 나와야한다. 혹시나 골수검사 결과에 문제가 있으면 열흘 내로 연락이 온다고 한다. 별도의 연락이 없으면 다음 외래인 1달 후에나 방문하면 되는 것이다. 검사 이후에는 매번 이렇게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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