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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1-0713 북한산 청년 연수와 함께한 나흘 ②

Diary/오늘은

by 황제코뿔소 2020. 7. 2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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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1 이 곳은 우리가 접수한다
연수가 독서모임(a.k.a. 산책)을 본인의 집으로 초대했다. 연수를 포함하여 창비를 같이 읽고 있는 멤버들 모두가 이 독서모임 소속이다. 창비 멤버들은 지난주에 책거리 겸 집들이로 이미 방문한 바 있지만 독서모임 멤버 중 일부와 함께 다시 한 번 찾아오게 되었다. 각자가 준비하는 시험이나 근무 일정 등으로 지속적으로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멤버들도 하루 빨리 봤으면 좋겠다.
은평구에 집결한 우리는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는 롯슈에서 장부터 봤다. 이것저것 담다보니 한 가득이 된 짐은 배달로 처리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탔다. 다리가 불편한 펭귄 외에도 통깁스를 해버린 지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를 삐었다고 보호대까지 차고 온 민지까지 뒤늦게 도착했다. 암 환자인 나에다가 죄다 절뚝거리고 있는 멤버들 ㅋㅋ 환자 모임인지 독서 모임인지 헷갈리지만 오늘의 멤버가 모두 모였다. 집주인만 빼고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집주인이 출근한 사이에 집을 장악했다. 우리가 모인 날은 토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학교 교사인 연수는 휴일이 일요일,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처음 와 본 친구들이 집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바로 먹기 시작했다. 피자와 분식에 닭강정까지 푸짐하게 시켜서 흡입했다.
다음 일정은 커피 마시며 보드게임 딕싯(Dixit)하기! 내가 딕싯 확장판을 야심차게 준비해갔다. 항암치료로 인해 활동에 제약이 많아진 이후 나는 보드게임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고 이후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본 멤버들도 자연스럽게 여러 게임을 함께 해보게 되었다. 딕싯은 이전 포스팅에서 간단히 소개한 바와 같이 특유의 감성과 플레이어들 간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우리들 사이에서는 갓겜으로 등극했다. 딕싯은 현재 5개의 확장판이 나왔는데 <예지>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귀하디 귀한 4개의 확장판들 중 내가 2개를 구한 것이다.

대구의 한 도매업체에 연락까지 해가며 구한 나의 노고를 생색내가며 우리의 게임타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우리 모임이 본래 독서모임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가며 먹고 놀았다. 뭐 가까운 사람들끼리 얼굴 보고 좋은 시간 보내자고 모이는 것이지 책이 대수랴.


그렇다고 우리가 아예 책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지나가 본인이 총학생회장으로 있을 당시에 함께했던 집행부원들과 저녁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야했다. 우리는 지나를 보내고 집주변을 간단히 산책하고 들어와서 각자 책을 들었다.


우리는 독서모임을 각자 자유롭게 책을 선정해서 읽은 후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작성하여 미리 공유하고, 만나서는 해당 책들과 글들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글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래처럼 진행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가방에 책 한권이 들어있었고 연수의 책장에는 시집이 가득했다. 블루투스 스피커 작동에 실패하여 카페 분위기를 100% 내는 것엔 실패했지만 북카페에 온 손님들처럼 각자 독서를 하며 집주인인 연수를 기다렸다.
자전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연수가 집에 도착하자 북카페는 아고라가 되었다. 토론 주제는 저녁 메뉴. 동네 맛집에 가고 싶다는 욕구와 집을 나가고 싶지 않은 귀찮음이 첨예하게 부딪혔다. 한참을 치열히 논쟁한 끝(역시 민주주의는 쉽지 않다..)에 내가 봐 둔 국밥집에 가보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 연신내역 옛날국밥앤갈비한판 이다. 갈 일이 있다면 강추. 가격도 맛도 양도 정말 굳굳. 여자 멤버들은 청하 한잔까지 겻들여 먹었다. 얼마나 부럽던지ㅠㅠ 연수는 몇 시간 후에 귀가해야하는 멤버들을 위해 운전을 해야해서, 나는.. 술 먹으면 큰일난다.
만족스럽게 배를 채운 후 우리는 상쾌한 저녁 공기도 마시고 동네 골목도 구경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게임 한판 할 시간 ㅋㅋㅋ 아까는 <하모니즈>를 했으니 이번에는 <10주년 기념판>을 플레이했다. 역시나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딕식만의 감성이 충만하면서도 다른 버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카드들이었다.


이런 파티 게임에 어울리는 디저트, 바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1판을 달렸다. 아이스크림은 오늘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한 내롬이가 기프티콘으로 우리 먹으라고 기프티콘으로 보내왔다. 하여간 센스 넘치는 달달한 녀석.

민지는 집가기 수월한 지하철역에, 펭귄은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나니 연수와 나 그리고 한솔이만이 남았다. 다음엔 밤새자던 한솔이의 지난주 집들이 방명록처럼 나와 한솔이는 오늘 자고 가기로 한 것! 집에 돌아오니 1시가 다 되었다. 잘 준비를 싹 하고 나서 우리는 담소 타임을 가졌다. 나는 3시까지 버티다가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고, 연수와 한솔이는 잭콜을 마시면서 5시 반까지 대화를 나눴다.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나와보니 그때가 되어서야 정리를 하고 있던 것. 해가 떠 있었다. 나도 한 때는 저렇게 술 마시며 얘기 나누면서 밤을 새곤 했었는데ㅠㅠ 그립다 그 시절. 얼릉 더 건강해지고 싶다.

# 20200712 아쉽지만 내일 보아
새벽까지 놀고 난 다음 먹는 아침은 역시 라면이다. 김치도 너무나 맛있어 보였지만.. 난 김치도 못 먹는다.

얼마 자지 못한 연수는 머리에는 까치집 틀고 비몽사몽의 눈빛으로 라면 면발을 힘차게 빨아 당겼다. 손님들 편하게 자라고 본인은 거실에서 열악하게 잔 탓에 더 피곤했을 터ㅜ 한솔이는 카페룸에 나는 안방에서 나름 편히 잤다. 한솔이도 연수처럼 얼마 못 잤지만 쌩쌩했다. 역시 젊음이 좋다.


아침을 간단하지만 맛있게 먹고 우리는 예술 활동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내 아이패드로 돌아가며 서로를 그려주기로 한 것.

한솔 by 연수

연수가 은근히 자신감을 내보이길래 기대했으나.. 연수의 작품은 하나같이 좀 무서웠다.

병진 by 한솔
연수 by 병진

 

한솔 by 병진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는 뒷산이라 할만한 근린공원으로 향했다. 한솔이와 나는 본시 등산모임(a.k.a. 솔방울)에서 같이 산을 많이 타왔다. 내가 아픈 이후로 솔방울 활동은 거의 일시정지 되었다. 어제는 가벼이 공원 입구까지만 갔던 터라 아쉬움을 달랠 겸 천천히 올랐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산에 오르니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얘기 나온 사마귀를 표현하는 한솔이의 퍼포먼쓰를 끝으로 내려 온 우리는 짐을 챙겨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연수는 내일, 그것도 아침에 볼 예정이었지만 아쉬움이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 집에 가야할 시간.


# 20200713 코엑스 데이트 + 배파크 주행연습
연수와 아침부터 만난 이유는 <씨네도슨트>를 함께 보기 위함이었다. 듣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세계적인 미술관에 대해서 미술사학자 전공자의 강연이었기 때문이다. 이 강연은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만 시리즈로 열린다.

나와 펭귄은 미리 예매를 해 둔 상황에서 말을 꺼내니까 반고흐 특집인만큼 본인도 너무도 가고 싶다고 하기에 내가 연수꺼도 예매해줬다. 아낌없는 호스팅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이었다. 펭귄까지 우리 셋은 봉은사역에서 만나 커피 한 잔씩 들고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강연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라 미술을 좋아하지만 깊은 지식이 있지는 않은 나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명화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인터넷에서 퍼온 듯한 워터마크까지 새겨진 이미지들이 낮은 해상도로 중간에 종종 나온 점은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말이다. 그래도 추천할만하다.


위와 같은 일정으로 다양한 미술관들을 접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 번 살펴보시길.
강연을 듣고 나온 후 펭귄은 바로 출근을 하고 나와 연수는 zara로 향했다. 내가 반품처리할 자라 옷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우리는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에 참 오랜만에 방문했다. 주로 인터넷으로 읽을 책만 딱 주문하기도 할 뿐더러 서점에서 막연하게 둘러보다가 몇 장만 읽어보고 책을 샀다가 후회한 적이 많다. 최근에는 방문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찾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오늘은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내 주거래은행인 영풍문고가 코엑스에 있기도 하고 연수에게 책을 사달라고 하기 위함이었다. 나도 연수에게 한 권 선물하기로 했다.


내가 고른 책은 보다시피『시를 잊은 그대에게』. 연수네에서 알게 된 책이다. "공대생을 울린 시 교양 수업"에 대해서는 이전에 들은 바가 있는데 이렇게 책으로 엮어 나온 줄은 모르고 있었다. 어제 연수에게서 빌리려 했으나 본인 수업 준비 때문에 안된다고 퇴짜를 맞았다. 본 책에 대한 리뷰는 곧 포스팅 예정이다.
이제 출출한 배를 채울 시간! 점심은 나의 비밀병기인 "중앙해장"으로 정했다. 연수와는 다른 후배들과 이미 한 번 같이 와 본 바 있다.


코엑스, 삼성역에 올 일 있다면 반드시 이곳을 가서 해장국을 드셔보시라. 정말 어마어마하다. 비싼 전골도 팔지만 양선지 해장국이 짱이다. 아 방문 요일과 시간에 따라 때론 오래 기다려야할 수도 있다.
우리 둘 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었다. "진짜 잘 먹었다"는 말을 몇 번을 했는지 ㅋㅋ 사실 난 양, 선지 모두 아직 먹어선 안되는 음식인데, 그냥 달렸다. 가끔의 일탈은 필요하니까!!
이제 연수가 나의 도로 주행연습을 도울 차례. 삼성역에서 버스 3정거장이면 우리 집 앞이다. 차키도 가지로 올 겸 연수가 엄마한테 인사드리겠다고 집에 같이 올라왔다. 한 숨 돌리며 우리는 각자의 책 선물에 짧은 편지를 써줬다.
그리고 지체없이 차를 끌고 나갔다. 연수가 차선 변경이나 좌회전, 우회전 할 때의 꿀팁을 전수해줬는데 초보인 나로서는 아주 실질적인 도움이었다. 역대 가장 오랜 시간 차를 끌고 나와 있었다. 내가 피곤해졌기도 하고 연수도 이번 휴일은 정신없이 보낸만큼 내일 출근을 앞두고 일찍 집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연수가 차로 집까지 나를 편안히 데려다 주었던 것처럼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아직은 무리. 많이는 아니었지만 비도 오고 있던 터라 먼 길을 보내는게 마음이 쓰였다.
이렇게 몰아서 시간을 같이 보내니 여운이 많이 남았다. 충분히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지만 나는 함께한 근래 나흘동안 연수에 대해 더 알 수 있었다. 공유되는 사소한 취향과 섬세한 감성이 생각보다 더 많았다. 눈과 마음이 맞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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