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0705 집들이
내게 소중한 인연들 중에 청년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친구, 최연수. 몇 달 전에 북한산 자락으로 이사 간 연수네로 집들이를 갔다. 그 전에 연수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싶다. 우리는 대학에서 만났다. 그가 막 스무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만났고 녀석은 어느덧 서른 즈음에 와 닿아있다. 그의 열정은 더욱 성숙해졌고 진중함은 더욱 단단해졌다. 녀석에게서는 항상 푸르름이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수의 첫인상은 강렬하다. 신입생 환영회에 와서는 태권도 도장을 가봐야 하지만 아쉬움에 잠시 들렸다면서 내가 있던 테이블에 와서는 원하는 만큼 술을 가득 따라주면 원샷으로 마시고 인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신환회를 준비한 나로서는 이렇게라도 와 준 것이 고마운 동시에 뭐지..? 싶었다. 쭈뼛하는 다른 새내기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당당함. 그러면서도 까불거리며 철없어 보이는 캐릭터들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진중함이 있었다. 내가 단과대 학생회 집행부를 운영하던 2013년에 우리의 인연이 맺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그해 여름 연수를 포함한 집행부 친구들과 해남 땅끝 마을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았던 그 보름간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이후 연수가 군대를 갔다. 휴가 때 비좁은 내 방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지만 제대 후 산행모임(솔방울)에 여러 이유로 함께 하지 않으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뜸해졌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다소 느슨해졌으나 흐릿해지진 않았다. 그러다 내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 부쩍 많이 보게 되었다. 내가 작년에 이식을 앞두고 떠난 동해여행에서부터 클럽창비 활동도 함께 하는 중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창비 계간지도 봄호에서 여름호로 넘어왔다. 연수가 봄호 책거리를 할 겸 계간지를 함께 읽는 멤버들(나, 펭귄, 한소리)을 집들이에 초대했다. 집들이를 위해 펭귄은 업무시간을 조정했고 우리는 5시쯤 만날 수 있었다. 겨우 날을 잡은 터라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무리가 더 익숙한 일요일 5시, 그렇게 짧지만 굵은 집들이가 시작되었다.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온 연수는 동네 맛집이라며 포장한 서오릉 피자를 들고 우리를 반겼다. 집이 오르막길에 위치한데다 펭귄이 다리가 살짝 불편한 상태이기에 도보로 10분 거리이지만 함께 택시를 탔다. 눈앞에 펼쳐지는 북한산 자락에 감탄하는 사이 금세 집에 도착했다. 출퇴근 때 쓴다는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심혈을 기울였다는 방! 흡사 카페같이 너무나 근사한 분위기였다. 부산사나이 연수의 자취경력이 느껴졌다. 자신이 원하는 컨셉대로 생활공간을 꾸미고 독립적인 생활을 잘해나가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멋있었다.
바로 저녁을 먹었다. 연수가 월남쌈을 준비해뒀지만 피자와 과일을 먹고 나니 다들 배는 부르고 커피만이 생각났다. 그래서 가볍게 산책도 할 겸 맛 좋다는 동네카페로 향했다. 뒷산에 가까운 공원도 있었지만 패스하고 은평구립도서관을 가로질러 내려갔다. 독특한 외관에 규모도 제법되어 보였다. 그리고 산도 있고 다세대주택가라서 그런지 냥이들이 많이 보였다. 동네가 좋다. 집을 잘 구한 듯 하다.
연수가 추천한 동네카페의 커피는 정말 맛이 좋았다. 커피를 호로록대며 올라오는 길에 우리는 내기를 했다. 연수는 게스트 세 명이 준비한 집들이 선물들 중 최소 하나를, 우리는 연수가 준비한 선물을 맞추는 것이었다. 1:3 대결인 만큼 연수는 세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에 맞췄다. 우리는 연수가 선물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샀다는 정보 외에도 많은 힌트를 얻었지만 맞추기엔 실패.
연수 혹은 펭귄의 월차를 내기로 걸었는데 8월에 펭귄이 월요일에 월차를 내고 네 명이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내기로 하였다. 그때는 문학나들이(ex. 윤동주 문학관, 라카페 갤러리, 김유정 문학관)를 떠나기로 했다.
우리 사이에서 갓겜으로 등극한 딕싯(Dixit)을 한 판하며 숨을 고르니 어느새 어둑해졌다.
마지막 일정으로 쪽지에 간략한 문구를 남겨 각자가 원하는 곳에 마스킹 테이프로 부착했다. 그리고 각자가 낭독했다. 한솔이가 다섯 글자로 방명록 남기기도 제안하여 이것도 작성 완료! 이에 연수는 자신의 시 <첫 월급으로 시를 받았습니다>으로 답했다.
아쉽지만 이제 일어나야할 시간.
내가 생각보다 오랜 시간 지하철 타고 가야하는 것이 걸린다며 연수가 쏘카로 차를 빌렸다. 본인은 지하철을 타고 갈 테니 편히 타고 가라며 한솔이는 기어이 지하철역 앞에서 먼저 떠났다. 그렇게 연수 덕에 펭귄과 나는 편안히 집에 왔다. 펭귄 집으로 먼저 향하는 길에 연수의 여자친구 분(a.k.a 나타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필 딱 코뿔소의 코스모스를 보던 중이었다던 나타샤님. 서로 말씀 많이 들었다며 조만간 한번 뵙자는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딥톡을 나누며 우리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밤 12시가 넘었다. 귀가까지 책임지는 연수의 완벽한 호스팅 덕에 더욱 편안하고 즐거운 집들이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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