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는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 만난 인연 중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다. 우리는 많은 대화와 논쟁을 나누었으며 서로에게 좋은 배움이 되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직후에 나의 상태를 미리 알린 유일한 대학원 사람이기도 했다. 연구소 조교 자리에 대체자가 당장 필요했던 탓도 있었지만 내게는 그만큼 유의미한 친구였다.
그녀는 원래 같았으면 작년에 미국으로 나갔을 나에게 ‘공부’ 얘기를 드러내지 않고자 했다. 병마로 인해 나름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가고자 했던 길에서 멈춰야만 했던 나의 상실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정치학 분야의 연구들과 ‘공부’ 얘기를 하면 가슴이 뛴다. 그래서 나를 배려한답시고 우리가 당연히 주고받았을 이야기를 억지로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돕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작년에 그녀가 미국 유학 준비를 할 때 나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받는 무균실에서 그녀의 연구계획서에 코멘트를 달아주었을 때도 밀려드는 상실감보다 재미가 더 컸고 그녀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올해 초 그녀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와 미국 대사관의 업무 중단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있었지만 비자는 결국 발급이 되었고 그녀는 어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주 금요일인 7일, 나와 그녀를 정말 아껴 주시던 안도경 교수님이 송별회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송별회가 끝나고 우리는 포옹을 나누며 서로의 등을 토닥였다. 꼭 건강 회복해서 얼른 오라고, 내몫까지 열공하라고.
내가 지영이 송별회를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부터 엄마는 곧바로 울먹이셨다.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엄마의 슬픔은 정작 비워져 있던 나의 마음에 차올랐다. 한 켠밖에 되지 않는 좁디 좁은 공간에 몰아 놓았던 씁쓸함은 이럴 때 범람한다. 그 맛은 또 왜 이리도 짠 것인가.
내가 합격했던 대학들 중에서 2곳은 나를 2년동안 기다려주겠다고 하였다. 내가 받기로 했던 장학금과 입학허가는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그 2곳 중 하나가 그녀가 간 대학이다. 내가 건강 관리를 잘하고 내년에 그 대학으로 가기를 결정만 한다면 거기서 만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여러모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즐거운 상상이다. 거기서도 잘해내겠지만, 응원한다. 파이팅 전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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