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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을] 7주차: 엉킨 실타래와 한 올의 실마리

Library/Club 창작과비평

by 황제코뿔소 2020. 11. 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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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과비평의 논단 파트에서 이정철 교수<볼턴의 강대국 정치와 남북관계의 이행기 자율성>를 읽고 두 편의 고전적 저작이 떠올랐다. 하나는 『인간 국가 전쟁』이다. 국제정치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 "왜 전쟁은 일어나는가?"를 다루고 있는 본 책은 전쟁의 원인을 인간, 국가 그리고 국제체제라는 세 층위로 나누어 분석한다. 전쟁과 평화와 관련된 서구 지성사 전반을 훑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사상가들을 비교 분석하고 있는데, 그 깊이와 설득력이 정말 감탄을 자아낸다. 1959년에 출판된 이 책은 저자인 케네스 월츠의 박사학위논문이기도 하다. 국제정치 분야는 월츠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고 그는 2013년에 타계했지만 그의 이론(『국제정치이론』)을 대체할 이론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인간 국가 전쟁
국내도서
저자 : 케네스 월츠 / 정성훈역
출판 : 아카넷 200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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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결정의 엣센스』(최근 『결정의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재간행)이다. 본 책은 누가 어떻게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지를 3가지 모델(합리적 행위자, 조직행태, 관료정치)을 통해 설명한다. 국제정치에서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국가가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모델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경제학의 영향을 받은 모델이다. 이 모델은 결과론적인 해석과 정책 결정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이론에서 확고한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결정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이를 그레이엄 앨리슨과 필립 제리코가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성과를 동원하여 쿠바 미사일 사태를 사례로 3가지 모델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걸작이다. 

결정의 엣센스
국내도서
저자 : Graham, Allison / 김태현역
출판 : 모음북스 200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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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편은 모두 저명학 학자들의 박사학위논문(이런 사실을 상기하면 학계로 돌아갈 의욕이 확 떨어진다..)이라는 점이나 내가 이정철 교수님과 같이 세미나를 했던 책들이라는 외부적 공통점 외에도 거시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장 미시적인 변수인 '개인'에 대해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넘어간다는 내용적인 공통점이 있다. 분석의 대상이 복잡할수록 작디 작은 요소를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부분에 천착하여 실체로부터 너무 멀어져서는 그 설득력이 미미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개인'이 아닌 어떠한 요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정철 교수가 글에서 지적하듯이 존 볼턴이라는 한 '개인'은 2018년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협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영향은 대한민국으로서는 분명 부정적이었다. 볼턴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었지만 미국의 제27대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그 최종 결정권자인 트럼프를 설득함으로써 자신이 뜻했던 백악관 정상회담 무산, 하노이회담의 실패와 한미연합연습(war game) 실행 등의 목표를 달성했다. 

"싱가포르회담 직전인 2019년 5월 CVID라는 표현 때문에 회담 결렬의 위기까지 갔던 북한이 받을 수 없는 구절을 볼턴이 또다시 강요한 것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일본인 피랍자 문제를 북미공동선언에서 다루라는 볼턴의 생떼 같은 요구였다. 북일회담도 아니고 북미회담에 일본인 문제를 집어넣는다는 발상은 미국의 안보보좌관이 얼마나 일본에 경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특히 볼턴이 빅딜이냐 스몰딜이냐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여있던 트럼프가 결국 협상 결렬이라는 제3의 대안을 선택하게끔 집요하게 설득하는 대목은 가히 인상깊다. 하노이회담을 앞두고 2월 12일 백악관 준비회담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간의 미국 대통령들이 가진 북한과의 회담을 나열하는 영상을 제작한 것이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와의 협상을 결렬시킴으로써 다음 회담의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레이캬비크회담을 영상의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트럼프에게 협상 결렬의 옵션을 각인하는데 성공하는 모습은 정말로 치밀하다. 자신의 신념에 확신에 차 열과 성을 다하는 개인이 중대한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창작과비평 2020 봄호의 논단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미 국무부 및 백악관 핵심관계자들이 한반도 의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관심 혹은 부정적이라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볼턴이 아니라 트럼프라는 개인은 "내부의 반대를 뚫고 뭔가를 만들어보려"했다. 그 동력과 유인이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결국 최고결정권자의 판단에는 그 결정권자 개인 외에도 다른 행위자들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해당 행위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층위를 총체적으로 판단해야 함은 지당하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특히나 이 문제가 복잡해서 그렇다. 남북관계, 북미대립, 한반도 평화, 분단과 통일.. 듣기만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주제들. 안그래도 뒤엉킨 이 실타래를 더욱 엉키게 하는 것은 '문제적' 당사자들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진전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의지대로만 되지 않는다. 미국 외에도 일본, 중국 그리고 남북갈등을 부추기거나 오히려 반기는 국내 정치세력들까지.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기에 이 뒤엉킨 실타래에서 한 올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심정으로 누군가는 볼턴의 회고록(The Room Where It Happened, 2020)이라도 뒤적이고 있는 것 아닐까. 

그 일이 일어난 방
국내도서
저자 : 존 볼턴(John Bolton) / 박산호,김동규,황선영역
출판 : 시사저널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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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의 국방 자주화는 군비증강 등으로 이어져 북한의 위협 인식을 자극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남북 사이에 상호 불신이 강화된다. 남북 간 안보 딜레마는 양측의 군비증강으로 이어지고 한국정부는 더욱 한미동맹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자주화 노력이 동맹 종속을 강화시키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하는데, 이러한 딜레마를 '자주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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