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죠.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합니다. 병균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가장 재조명을 많이 받은 소설, 『페스트』의 한 대목이다. 『이방인』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알베르 카뮈는 본 소설에서 평범한 인간들의 저항과 연대를 강조한다. 194x년 4월 16일, 알제리의 작은 도시 오랑에서 쥐 사체가 여기저기서 발견되더니 사람들까지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사망자 수가 치솟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도시는 봉쇄되면서 오랑시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만다. 작품에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묵묵히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 리유, 작더라도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해내고자 하는 말단 공무원 그랑은 주인공이자 고립된 도시에서 죽음과 이별에 대항하는 소시민을 대표한다. 코로나19에 맞서 현 인류는 백신이라는 대응 무기를 만들어 냈듯이 『페스트』에서는 혈청이 등장한다. 하지만 지구라는 행성에 고립된 우리를 진정 코로나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백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분투와 헌신이 아닐까?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조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또한 전염병을 다룬 작품이다. 본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백색 실명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감염된 사람들은 온통 ‘빛’만 보게 되지만 그들이 격리된 장소는 인간으로서의 규범과 윤리가 실종된 ‘어둠’으로 변모한다. 시력과 함께 인간성마서 상실한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위기 속에서 사익을 챙기기에 급했던 인물들, 비인간적 격리 및 강제적 수용 조치를 취한 권력자들 모두 결국 눈에 멀게 된다. 작가는 이기주의와 폭력에 빠지면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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