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 노동부 장관이자 현 버클리 정책대학원 교수인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 사회에 새로운 4개 계급이 출현했다고 주장했다.[1] 첫 번째 계급은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The Remotes)들이다. 이들은 코로나19 유행에 거의 타격을 받지 않는 전문기술 인력이다. 2012년 말 미국 동부에 허리케인 샌디가 상륙했을 때도 노트북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불편을 겪긴 했어도 고통을 겪진 않았으며 월스트리트 경제는 타격을 입지 않았다. 두 번째 계급은 ‘필수적 일을 해내는 노동자’(The Essentials)이다. 여기에는 경찰, 소방, 군인 등의 공무원들과 배달 및 운수 노동자, 의료진과 돌봄 노동자 등 코로나19 위기로 직장을 잃지는 않지만 감염 위험 부담이 큰 이들이 포함된다. 세 번째 계급은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The Unpaid)들로서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마지막 계급은 ‘잊혀진 노동자’(The Forgotten)들이다. 이들은 이민자 수용소나 감옥, 노숙인 시설, 이주민 노동자 캠프 등과 같이 미국인 대부분이 볼 수 없는 곳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본래도 사회에서 잊혀진 이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물리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다.
남미에서 상황이 가장 심각한 브라질의 경우도 비슷하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코로나19 확산세가 더딘 편이었다. 이는 확진자들이 주로 중상류층이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사실상 격리 혹은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중층 그 이하 계층으로까지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번졌고 몇달 만에 전 세계에서 확진자수가 4위까지 기록하게 된다. 2021년 4월 현재는 일일 사망자수가 4천명까지 다달았고 '변이 바이러스'까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의료 서비스 뿐만 아니라 행정과 법치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현실에서 코로나19의 여파는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특히나 노동자의 40%가 지하경제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브라질에서는 그 정도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브라질 정부는 한화로 약 5만에 해당하는 금액을 비공식 노동자(informal workers)에게 지급한다는 방안[2]을 내놓았지만 물가가 폭등하는 가운데 이러한 조치가 지니는 효용성은 극히 미미하기만 하다.
계급별 불균등성은 결코 해외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의 최하층에 위치한 사람들이 맞이한 팬데믹 시대는 집에서 ‘언택트(untact)’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과는 너무나 다르다. 2020년 2월 24일 수원의 한 노숙인자활시설[3]은 입소자들에게 코로나19 감염 예방 차원에서 출근을 위해 밖으로 나갈 경우 시설에 다시 들어올 수 없으며,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지역자활센터 일자리 외에 민간일자리를 다니는 입소자에게는 앞으로 지원금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통보한다. 입소한 노숙인들에게 자활시설은 당분간의 ‘집’이지만 주거와 일 중에 양자택일을 하라는 요구였다. 5월 6일 코레일 부산, 경남본부는 부산역 대합실을 폐쇄하여 팬데믹을 빌미로 노숙인들을 퇴거하는 오랜 염원을 자행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홈리스(homeless)들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에서도 철저히 배제되었다. “거주불명등록, 주민등록지와 노숙지역의 불일치, 가구 분리 문제, 지불수단(카드) 문제 등 거리 홈리스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신청 및 지급 방식으로 인해”[4] 전국민의 99.5%는 수령했지만 서울지역 거리 홈리스의 신청률은 35.8%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차 재난지원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난적 상황에 기본권과 자유가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은 난민을 연상하게 한다. 이전에는 낙인과 혐오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이제, 마치 유령과 같이 보이지 않는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1] “Covid-19 pandemic shines a light on a new kind of class divide and its inequalities,” The Guardian, 2020/04/26.
[2] "코로나19: 남미에서는 계급 문제가 된 이유", BBC 코리아, 2020/03/26.
[3] 노숙인복지법에 따라 노숙인 등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전문적인 직업상담 및 훈련과 같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말한다. 구직 과정에서 숙소가 필요한 노숙인의 경우, 스스로 입소하여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4] 최현숙, “거리 홈리스들이 살아낸 팬데믹 첫해,” 『창작과 비평』 190 (2020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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