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여행과 떠남 (<절반 이상의 하루오>, 이장욱)

Library/book

by 황제코뿔소 2022. 12. 31. 22:08

본문

그랬다. '살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하루오는 여행을 했다. 그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p.135)

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객지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사전에 따라 구체적인 설명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떠남'을 전제한다. 그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든, '여행' 온 이방인이 현지인처럼 '사는 것'이 가능할까? 현지인처럼 그곳에서 일하며 밥 벌어 먹고 사는 정도로 본래의 자신을 지워야지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여행과 떠남은 분명 다른 것이다.

이전에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여행이라..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나는 '평소의 나'를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온 적은 있으나 떠난 적은 없어서일까. 아무튼 나도 몰랐던 '나'는 어느새 절반 이상의 내가 되어버려, 나도 모르는 나를 마주한 경험이 선뜻 기억나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여행지에서 타인에게 가진 편견도 아닌 타인이 내게 어떠한 편견을 가졌는지 알 겨를이 없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에서 화자는 자신이 희망하던 해외 전출은 무산되고 다른 주변인들은 자신을 떠난다. 아내도, 옛 어자친구도, 고향 집에서 눈을 감은 아버지도. 안구가 터지는 끔찍한 상상을 되뇌이고서야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있었던 화자는 결국 "별다른 계획 없이 사표를 제출"하는 "급격한 중력의 변화"를 스스로 부여하고,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의지도 느껴지지 않는 이유로 훌쩍 떠난다. 비오는 갠지강을 흘러가던 하루오처럼 화자는 드디어 아주 조금은 자유로워진 듯하다.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본 소설에는 이장욱의 인장이 찍혀있다. 작품 제목에 명시된 미스테리한 인물이 화자와는 별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중후반에 들어 해당 인물이 기시감을 자아내는 장면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유명한 정희>가 떠올랐다. 또한 <유명한 정희>의 화자가 물에 얼굴을 파묻는 일종의 의식은 <절반 이상의 하루오>의 안구가 터지는 화자의 상상으로 치환해볼 수 있다. 이처럼 이장욱의 작품에는 인상깊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화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장욱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느껴진다.  자유로운 절반 이상의 하루오보다 허기짐과 쓸쓸함을 삼키고 있는 절반 이하의 하루오의 여운이 짙은 작품이었다. 

- 「여행하는 소설」 중 <절반 이상의 하루오>(이장욱)을 읽고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