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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도 위로도 (<망아지 제이슨>, 기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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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제코뿔소 2023. 3. 1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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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기를 가지기 위해 회사를 기만두고 친구인 항아가 있는 덴버로 가기로 한 동희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미국으로 가니 정작 항아의 룸메이트이자 우울증이 있으며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리아와 지내야 하는 상황에서 심지어 낯선 아이를 돌봐줘야만 하는 동희. 일곱살의 태은은 항아와 일리아가 멕시코 식당에서 총격당할 뻔 했던 것을 구해준 한국 남자의 아들이다. 그렇게 동희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 그리고 낯선 아이와 지내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간다. 그러던 중 정기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일리아를 두고 동희는 태은이와 마운틴 에반스에 가게 되고, 태은의 엄마가 죽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집으로 돌아왔을 땐 어지럽기 그지 없던 집을 깨끗이 청소한 일리아가 태은의 아빠가 무사하며, 항아가 곧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하며, 자신은 내일 매우 우울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나는 내게 호감을 보이며 호의를 베푸는 사람 앞에서 점점 스스로가 어던 사람인지 꺠달아 갔다.(p.94)

 "망아지 제이슨"이 일리아가 쓴 소설의 제목임을 알게 된 이후에도 본 소설의 제목을 그렇게 지은 작가의 의도를 바로 알지 못했다. 동희의 이야기만큼이나 태은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사실 오히려 그보다는 왜 작가는 하필 콜로라도라는 한국 사람들에겐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중부 지역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인지 궁금했다. 나도 콜로라도의 맑은 공기를 단 1초도 쉬어본 적 없지만 거기서 몇년을 지낼까 진지하게 고민해본 바 있다.

박사과정을 지원했던 미국 대학들로부터 결과를 통보하는 메일을 받은지도 어느덧 4년 전이다. 합격 통지를 받은 대학들 중 하나가 바로 콜로라도 대학(University of Colorado Denver)였다. 합격한 다른 대학들에 비해 소위 말하는 랭킹이 꽤나 낮음에도 불구하고 UC를 끝까지 고려했던 이유는 내가 연구하려던 분야의 대가들 중 1명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왔다는 사실만은 아니었다. 바로 자연환경이었다. 학교 홈페이지와 인터넷에서 접한 콜로라도의 전경은 그야말로 "장대한 풍경"이었다. 내가 아무리 자연, 특히 산을 좋아한다 해도 천혜의 자연환경이 학교 결정의 기준이 될 순 없었다. 결국엔 다른 사정으로 미국 유학길 자체를 접게 되었지만 말이다. 

다시 돌아와 주인공 동희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배경으로 드넓은 미국, 푸르고 한적한 콜로라도를 고른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위로'가 필요한 기분일 때 혼자만의 시간은 분명 "쓰러지지 말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준다. 재즈 음악으로 가득 찬 플레이리스트를 랜던재생하고 지긋이 눈을 감을 때, "장대한 풍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동희처럼 느릿느릿 혼자 걸을 때.

힘든데 비바람이 막 불어와. 그럼 시련이랑 비슷해. 시련의 뜻 궁금해했지? 근데 조금 더 비슷해지려면 거기에 마음을 하나 더해야 돼. 쓰러지지 말자, 하는 마음을 더하면, 힘껏 더하면, 그러면 조금 더 비슷해져, 시련의 뜻.(p.96)

동희는 태은, 일리아 그리고 콜린이라는 낯선 존재이지만 결국 사람으로부터 위로받는다. 나의 위로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마나의 애착 행위들도 내게 휴식을 주지만 치유에 이르진 못한다. 나의 위로는 아내 혹은 엄마로부터 완성된다. 사랑하는 아내를 꼭 껴안거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샬라샬라 털어놓으면 그제서야 힐링이 된다. 결국 상처든 위로든 사람에게 받는 것 같다. 안식처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 「여행하는 소설」 중 <망아지 제이슨>(기준영)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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