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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기에 더욱 갈망하는 (<사막으로>, 천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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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제코뿔소 2023. 6. 2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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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에게 보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보지 않은 우주를 꿈꿨다. 나는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곳을 향해 가고 있고, 긴 주행을 마친 아버지는 현재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정착했다.(p.239)

작품 속 화자와 아버지의 간극이 너무나 잘 느껴지는 문장이다. 화자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끝까지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 또한 캐릭터들간의 거리감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았던 아버지의 주행이 엄마의 병마로 인한 비상착륙했다는 점만큼이나 "부모를 돌보는 것은 자식의 일이 아니라"며 끝까지 자식의 부모 걱정을 걱정하는 부모의 모습이, 작품을 읽는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작품에서 아버지는 자신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동경과 그리움의 추구를 주인공에게 실현해보라 말한다. 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아버지의 권유는 딸을 통한 대리만족보다는 인간에게는 아직 실현하지 못한 세계의 경험과 동경이 필요하다 말하기 위함이다. 나 또한 우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더 넓은 곳과 다양한 경험에 대한 갈망의 연장선상일 듯 싶다. 내가 우주를 가장 가까이 느껴본 것은 우유니 사막에서 봤던 밤하늘이다. 쏟아질 듯한 별들이 바닥에 고인 물에도 비쳐서 내가 마치 우주에 떠있는 느낌이었다. 당시에 잔뜩 마신 와인에 오른 술기운도 한 몫했겠지만.

길은 늘 외롭단다. 적당히 외로움을 길 밖으로 내던지며 나아가야 한다. 외로움이 적재되면 도로도 쉽게 무너지니까.(p.239)

우주여행이 어느새 현실에서도 가능해졌지만, 아무래도 나의 현실이라 보기엔 어렵다. 내가 평생 만져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금액을 지불해야만 여행 가능한 곳이기에 우주가 더 멀리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그들에게조차 아주 잠시 동안의 '여행'만이 허락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이 행성에 갇혀 있다는 동질감을 혼자 느끼면서 정신승리를 해본다. 기어이 자신이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는 최근 비극으로 마무리된 타이타닉호 관광 여행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들만의 여행'에 대한 나의 삐딱한 시선은 본 소설의 맥락과 전혀 관련이 없다.)


별들로 가득한 사막의 밤하는과 우주를 오간 <사막으로>는 「여행하는 소설」에 수록된 작품들 중 공간적으로 제일 이질적이었다. 젊은 SF소설가로 잘 알려진 '천선란'스러웠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사막으로>가 내가 읽어 본 그녀의 첫 작품이다. SF소설은 나의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딱히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참에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와 로봇기수의 관계를 다룬 천선란 작가의 대표작, 「천 개의 파랑」을 읽어볼 셈이다. 장르와 소재를 떠나서 단편이지만 <사막으로>를 통해 작가에게 기대와 (약간의) 신뢰가 생겼다. 

- 「여행하는 소설」 중 <사막으로>(천선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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