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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변호사, Next」 박지영 에세이: 시간 낭비인 에세이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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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제코뿔소 2024. 2. 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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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5살 때부터 피아노가 전부인 세상을 살다가 19세에 임파선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법대에도 입학한다. 그렇게 법대도 졸업하고 사법시험도 합격하여 변호사가 된다. 병마를 이겨내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성취했다는 점, 서울대 및 변호사 등 성취한 내용이 한국사회에서 다수가 선망하는 학벌과 직업이라는 점이 바로 눈에 띌 것이다. 

 

저자는 변호사가 된 이후 로펌 외에도 부동산중개법인, 법률AI개발회사도 설립하여 운영 중이라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뛰어난 사업 수완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또한 소아암 환아들을 지원하는 비영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자신과 유사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도 제공하는 사회적인 기여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이렇게나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인 것과 별개로 이 책은 아쉬운 점이 너무나 많다. 여러 측면에서 내가 시간 낭비라고 분류하는 에세이의 전형이다. 굳이 시간을 들여가며 본 책에 대한 서평을 이렇게 남기는 이유도 바로 단순 이 책을 넘어서 그 전형에 대한 정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책에는 은은한 자기 자랑으로 가득하다. 자랑할만하니까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자랑을 늘어놓는 자기 이야기에 관한 책이야 한두권이겠는가. 문제는 아닌 ‘척’하거나 다른 내용이 있는 것 같지만 결국 본인의 목표 의식과 재능 그리고 노력이 얼마나 남달랐는지에 그친다는 점이다. 독자에게 유의미한 효용을 남기는 자랑이나 서술 방식이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지?’하는 물음이 자연스레 튀어 나온다.

 

사후적인 서술로 보이는 대목이 너무 많다. 책은 1, 2장에서 피아노에 푹 빠진 어릴 적 이야기가 나오는데 특히 여기서 과거의 단편을 현재의 시점에서 포장한 것은 아닌지 싶은 부분이 많다.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저 나이에, 저 상황에, 저렇게 느꼈다고 기억한다고?’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느껴지는 에세이와 자서전이야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을 것이고,  「피아노 치는 변호사, Next」도 그 중 하나이다. 솔직하지 못하다고 느껴지면 책을 읽는 내내 신뢰가 가지 않는 법. 

예를 들어, 개인의 삶에서 느낀 사랑과 상실을 자연의 맥락에서 섬세하게 풀어낸 마거릿 렌클의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는 저자의 어머니가 태어날 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 본인이 태어나기는커녕 자신의 어머니가 태어난 당시를 서술함에도 포장의 느낌이 전혀 없다. 외할머니가 말해준 이야기에 대한 기록임을 밝히고 있고, 첫 페이지를 넘기면 아예 모계의 가계도가 등장한다. 

 

이러한 측면만이 아니라도 「피아노 치는 변호사, Next」에서 과거에 대한 회상과 자신의 결심에 대한 서술이 나로서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이 전공한 작곡이론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곡이론과의 학문적 풍성함과 유용함을 별론으로 하고, 그 학문은 연주와 무대, 그 자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피아노가 좋아서, 성악이 좋아서, 기타가 좋아서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던 이들에게는, 딸기를 좋아하는데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것처럼, 근접은 했으나 그 자체는 아닌, 허전함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과 친구들의 상당수가 과의 정체성과 자신의 미래를 놓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제대로 살겠다는 의욕만 있을 뿐 진로가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서울대 음대를 잠시 쉬어가는 간이역으로 여겼다고 한다. 동시에 자신은 어떻게 살 것인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했고, 음대 4년간 봉사활동을 하며 인생의 목표를 이웃을 사랑하는 일로 설정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멘토였던 분이 사법시험을 권유했고 이를 계기로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변호사가 된 것이다. 

 

이웃 사랑이라는 의미 있는 목표의 유용한 도구로서 변호사가 되었다는, 자소서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가 그리 와닿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인생이라고 여기던 음악의 길을 벗어난 것인지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투병 당시의 서술에서 의미있는 삶에 대한 고민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가 음대 졸업 이후의 서술에서 이웃을 위한 삶이라는 듣기에 참으로 훌륭한 삶의 목표가 갑자기 등장할 뿐이다. 결국 저자 또한 정체성과 미래를 고민하던 과 학생들처럼 작곡이론과 전공을 살려서는 미래가 불투명했고 밥벌이를 고민하던 중 변호사가 좋은 옵션으로 여겨져서 준비하게 된 것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의아한 부분도 있다. 저자는 말미에 ‘왜’라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왜’냐고 묻는 이들이 “자신은 안하고 못 해서 한 마디씩 던져보는” 것이라고 치부한다. ‘왜’냐는 질문에 이러한 예민한 반응은 자신에 대한 질문을 원천 차단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변호사가 된 이유가 정말 이웃을 위한 삶이 맞냐는 질문이 듣기 반가울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중간쯤에는 아팠다는 경험이 교만의 냉소가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갑자기 “배타적 냉소주의의 극소수 운동권 출신들이 ‘너 감옥 갔다 와봤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며 갑자기 운동권을 소환한다. 또 한국 사회는 변호사가 가지는 공적 기능에 유달리 주목한다고도 언급하는 대목은 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변호사의 시선이 맞는지 의아했다. 

 

동일한 책이라도 독자에 따라 읽는 목적과 책으로부터 기대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나와는 다르게 느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이 책을 굳이 읽게 된 계기였던 환우회 독서 모임에서는 이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멤버도 있었고 나처럼 좋지 않게 읽었던 멤버도 있었다. 나로서는 저자에게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책에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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