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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us, 2019)- 커다란 캔버스에 깨작깨작 붙여놓은 스티커

Theatre/movie

by 황제코뿔소 2020. 3. 8.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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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는 "미국 본토 에는 수천 km에 이르는 터널들이 있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버려진 지하철과 폐광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자막이 이어지면서 시작부터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암시한다. 

응? 지하세계??

그렇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스케일이 크다.

정확히 말하자면, 설정의 스케일이 크다. 

이 특징 자체가 작품의 단점이 될 순 없다.

문제는 <어스>가 이러한 커다란 스케일의 설정을 가져다놓고 조잡스러운 은유와 상징만 여기저기 잔뜩 흩날리고 있다는 점이다. 

#2

우선 기본적인 줄거리와 함께 조금 풀어서 설명해보겠다.

어릴 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떠난다.

트라우마를 겪게 된 바로 그 해변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불길한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그날 밤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네명의 존재들이 여자의 가족 앞에 나타난다. 

이들은 테더드(the tethered-묶여있는 자)라 하여 미 정부가 지상의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복제적 존재이다. 정부의 실험이 실패하면서 테더드들은 지상의 사람들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괴이한 존재로서 지하에 방치되었다. 이들은 주인공 여자의 어릴 적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게 되고 각자와 '묶여있는' 본체(?)들을 찾아 가위로 찔러 죽이고 다닌다. 

위와 같은 음모론적인 설정이 나에게는 과하게 다가왔다. 미국 정부가 무슨 구체적인 이유로 어떠한 방식으로 테더드를 만들어냈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생략 자체가 영화를 해치는 것은 아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가 45일 안에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는 훨씬 황당한 설정이지만 그 배경과 원리를 설명하지 않지만 'good movie'인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어스>에서 지하와 지상의 세계가 왜 충돌해야하는지 설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테더드가 왜 주인공 가족을 죽이고자 하는지는 영화 후반부에 가면 납득이 된다. 그 이유는 주인공의 테더드가 유일하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유이며 이 영화의 반전이다. 하지만 친구네 가족의 경우 그들의 테더드들에 의해 몰살당하지만 그러한 승리로 인해 테더들에게 발생하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왜 전국민의 테더드들은 가위를 들고 꼭 설쳐야만 하냐는 것이다. 조던 필 감독이 전작 <겟 아웃>에서 흑인-백인 간의 인종 간의 착취라는 현실에서 실재하는 중요한 갈등을 다뤘던 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3

<겟 아웃>과 공통점이 있다면 수많은 상징과 은유이다. 

본 영화가 많이 회자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개봉한지 1년이 다 되가는 지금, 작품의 떡밥과 해석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설명들이 존재할 것이다.

가위라는 도구가 내포하는 대칭성이니 하얀 토끼의 상징성이라느니.. 굳이 이 포스팅까지 설명에 가세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그러한 상징과 은유가 작품의 설정 속에서 매끄럽게 나타나고 있느냐 그리고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느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개연성을 해치면서까지 과잉으로 주입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숫자 1111은 영화 내내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가족 4명이 서 있는 위의 사진에서부터 해변을 걸어가는 가족들의 그림자, 성경구절, 농구경기 스코어, 시간 등등..

'1111' 자체가 지니는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 없다.

시각적 이미지를 위한 임의적인 선택일 뿐이다. '4444' 여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예레미야 11장 11절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다.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이는 영화의 내용과 상관은 있지만 다른 복음 44장 44절 중에 영화와 관련있는 구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1111'을 한번이라도 더 관객들에게 들이밀고자 안달이 나는 바람에 '예레미아 11:11' 가 적힌 들고 있던 인물은 하필, 정말 하필 주인공 가족이 해변으로 가는 길에 그 바로 앞에서 구급차에 실려간다. 

결국 정교하지 못한 거대한 설정을 채우고 있는 것은 갖가지 상징과 레퍼런스 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영화를 보는 잔재미를 높이고 작품을 감상한 후에 회자될만한 것들을 많이 생산하겠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커다란 캔버스를 채울 자신이 없었는지 난해한 스티커만 여기저기 붙여놓은 꼴인 것이다. 

#4

시종일관 주인공 가족의 시점으로 진행되다보니 '나머지 테더드들은 자신의 짝을 다 죽이고나서 저렇게 다른 테더드의 손을 잡고 기다랗게 서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엔딩 장면도 수없이 많은 테더드들로 이루어진 끝없는 행렬이다. 일단 이들은 왜 이러고 있는가? 이렇게 손을 맞잡고 길게 늘어서있는 장면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Hands Across America Campaign"과 관련이 있다. 본 캠페인은 1986년 5월 25일 'USA for Africa'가 사회약자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취지로 주도하였는데, 미국의 서부에서부터 동부까지 가로지는 사람 띄를 만드는 방식으로 기획하였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본 캠페인의 실제 광고가 나오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본 캠페인이 현실에서 재앙에 가깝게 실패로 끝이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이를 캐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시 실제 캠페인 참가자들

조금 자유롭게 해석을 해보자면, "We are Americans" 이라는 의미심장한 대사와 이를 엮어볼 수도 있겠다. 정체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주인공 여자의 테더드는 위와 같이 답하는데, 이는 길게 맞잡고 늘어선 줄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장벽을 떠올리게 한다. 

#5

대사와 캐릭터 설정도 주어진 상황과 이질적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주인공 가족의 아빠인 게이브는 시종일관 잡소리를 해댄다. 처음 마주한 테더드들에게 위협을 당할 때는 자신의 보트를 가져가라느니, 대책회의를 할 때는 <나홀로 집에>를 언급한다. 자신의 다리가 아작나고 가족들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철없는 아빠' 캐릭터 설정이라기엔 너무 과하다. 

뿐만 아니라 누가 운전을 하느냐를 두고 죽인 테더드 수를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는 가족들의 대사는.. 정말 맥이 빠진다.

그리고 왜 주인공 여자는 굳이 딸의 테더드의 생사를 확인하겠다고 혼자 어두운 숲 속을 들어가는거지?

왜 주인공의 테더드는 마지막 결전에서 주인공을 계속 살려주는거지?

#6

32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84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했다기에 의외라 생각했다. 알고보니 여우주연상 부문.

여자 주인공을 연기한 루피타 뇽의 연기는 훌륭했다. 

뀨우~?

그러나 난 전체적으로 실망을 너무 많이해서 시간이 아까운 정도였다.

재밋게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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