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영화는 다음의 문구로 시작한다.
"And never have I felt so deeply at one and the same time
so detached from myself and so present in the world"
(어느 하나에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나 스스로 격리되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다)
- Albert Camus(알베르 까뮈)
<디태치먼트>는 문제아들이 많기로 유명한 학교에서 일하게 된 기간제 교사 헨리에 관한 이야기다. 교사도 학생도 서로를 포기한 상황에서 부드러움과 엄격함을 모두 겸비한 헨리에게 학생들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하지만 자신의 힘든 기억과 녹록치 않은 주변 상황 때문에 학생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으려는 헨리. 그런 그가 자신이 맡은 반의 왕따 메레디스와 거리에서 만난 10대 소녀 에리카를 만나면서 점차 변하게 된다.
<피아니스트>로 전 세계에 얼굴을 알린 애드리안 브로디가 헨리 역을 맡았다.
난 내공 가득한 주인공 선생님이 문제아들을 카리스마 넘치게 길들이는 장면들을 기대하며 본 작품을 골랐다. <굿윌헌팅>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말이다. 실제로 그런 장면이 작품 초반에 나온다. 첫 수업에서 그는 선언한다. "자, 내 수업에서는 단 한가지의 규칙만 존재한다. 수업에 들어오기 싫으면 들어오지 마라." 그리고 파워중이병에 걸린 한 학생에게는 "네가 화난 거 잘 알아. 나도 예전에 그랬거든. 하지만 화내선 안돼. 나는 네게 기회를 주려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일테니까. 자 이제 종이를 한 장 줄테니 자리에 앉아서 최선을 다해봐. 알겠지?"라며 성숙하게 학생을 감싼다.
하지만 선생님도 아프다. 학생들 외에도 돌봐야할 치매 걸린 할아버지가 있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 헨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간접적으로 남겼다.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불안정한 개인들이다. 영웅적인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서로 다른 아픔에 휘청이는 그들은 각자만의 방법으로 균형을 꾀한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는 힘든 나 자신이 조금이나마 편해보고자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흔들림, 그것은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의 충격 때문이 아니라 그냥 우리 모두의 삶에 내재되어 있다. 그 형태가 다를 뿐.
기회는 대단한 시혜가 아니라 따뜻한 손길을 한번 내미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헨리가 유일하게 웃는 장면은 에리카와 함께 있을 때이다. 헨리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따뜻한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한다. 설령 그 마음의 시작은 동정심이었을지라도 결국 위로와 사랑을 받는 것은 헨리 자신이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선생이 바로 부모다. 작품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메레디스가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메레디스는 우선 겨우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헨리를 폭발하게 만든다. 그녀가 헨리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헨리를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이는 헨리의 어릴 적 상처를 소환한다. 나아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결단을 내린다. 그 선택은 이제 학교를 떠나던 차였던 헨리에게 결코 아물지 않을 상흔을 남길 것이다. 하지만 메레디스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 것은 헨리의 거절이 아니라 결국 가족의 폭언이다. 어른답지 못한 부모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면, 그 부모가 결계를 깨고 내 방으로 들어와 술에 취한 채로 원초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것을 반복적으로 듣고 있노라면.. 길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내 친구 조개탕이 많이 생각났다. 아래 포스팅의 주인공인 조개탕은 나의 베프이자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이 녀석은 어느 새 5년차 선생님이다. 비교적 낙후된 지역으로 일부러 자원해 가서 부모들의 방치 속에 놓인 학생들을 위해 고민하고 나름의 실천을 하고자 애쓰는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고 멋진 어른이다. 그런 노력 중 하나가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해설하고, 국내 괜찮은 대학의 교수님들을 학교로 모셔서 아이들의 동기부여를 자극하고자 일일이 컨택한다.
https://hworangi.tistory.com/9?category=891784
까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락하면서 자신의 초등학교 교사 루이 제르맹에게 이 상을 헌정한다고 밝힌다. 교사가 얼마나 위대한 직업인지, 한사람의 애정과 노력이 타인의삶 그리고 인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예이다.
이 영화의 단점은 촬영과 편집이다. 우선, 출연진들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들이 과도하게 많다. 영화는 문학과 달리 시점이 수시로 바뀔 수 밖에 없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촬영은 배우가 직접 말을 거는 상대방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본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헨리가 누군가에게 교육현장의 실태를 역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도무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배우들은 자신들의 얼굴이 상당히 클로즈업 된 채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다.
이러한 촬영은 안정적이지 않고 흔들거리는 초점과 등장인물을 밑에서부터 올려 찍는 방식과도 모두 관련있어 보인다. '선생-학생 모두가 각자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흔들리는 객체'라는 작품의 주제를 촬영방식으로까지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러한 촬영과 작품의 메시지 간의 일치는 좋은 시도이지만, '비일반적'인 촬영과 시점이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너무 어지럽고 답답하며 정신없다.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적극적인 편집도 아쉽다. 중간중간 분필 그림들이 애니메이션 형태로 삽입되고 헨리의 어린시절로 보이는 레코딩 장면들이 현재 시점과 교차하며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인위적인 편집은 에리카와의 만남 이후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헨리에 몰입하는 것을 아주 철저하게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영화는 장점이 더 많다. <디태치먼트>는 교육영화들 중 손꼽히는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1년 트라이베카 국제영화제 초청을 시작으로 도쿄 국제영화제 예술공로상, 도빌 아메리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발랑시엔 국제영화제 관객상, 상파울로 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애드리언 브로디의 훌륭한 연기 또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참고로 그는 본 영화에서 배우뿐만 아니라 제작자로도 참여했는데, 이는 30여년간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한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서로를 밀어내는 상황에 놓여본 적 있는가? 혹은 지켜본 적 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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