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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by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Library/book

by 황제코뿔소 2020. 3. 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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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거의 하루만에 뚝딱했다. 

요즘 '법', '변호사'에 꽂혀있는 나는 서점 어플에서 관련 키워드로 검색을 하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나의 주거래서점은 영풍문고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서점이기 때문이다. 근데 어플이 교보문고나 반디앤루니스에 비해서 정말 별로다. 그래서 가끔 어떤 책이 나왔나 폰으로 아이쇼핑할 때 다른 서점 어플을 사용한다.)

아주 직관적인 제목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검색해보니 유럽에서는 이미 열풍을 이끈 책이었다. 2009년 8월에 출간된 이후 무려 50주 이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독일 신인작가 중에서는 최초로 데뷔작이 전 세계 25개국에 번역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 책의 장르와 내용은 무엇일까?

지은이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다름 아닌 형법 전문 변호사이며

이 책은 쉬라크가 직접 변호했던 11개의 사건들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실화인 각각의 사건들은 영화가 따로 없다. 

한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토막 살인한 노인은 3년 형을 선고받는다. 심지어 하루 일과를 자유롭게 생활하고 잠만 형무소에서 자면되는 '자유 공개 형벌'로 자신에게 내려진 형을 치뤘다. 왜 노인은 왜 자신의 아내를 도끼로 찍어내렸을까? 잔혹한 살인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형벌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언도된 것일까?

그밖에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등에 칼을 꽂는 청년,  풍족한 부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동생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까지 끊는 여인, 2번이나 은행을 털고서는 은행 앞 풀밭 한복판에 멍하니 앉아 체포에 응한 에티오피아 남자.

"에티오피아 남자"와 더불어 이리나와 칼레의 사연이 담긴 "행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힘든 역경의 시간을 견디고 견디어 서로 만나게 된 두 남녀는 서로에게 행운이 되고자 한다. 이제는 우리가 이전과 다르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되어 준 그들의 애뜻함이 많은 여운을 남겼다. 

저자는 사건에 대한 서술에서 더 나아가 처벌의 의미와 존재 가치 등과 같은 법적 딜레마를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던진다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지켜보기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의 변호사는 고객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최선은 진실을 아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정황만 알고 있어도 혹 억울한 판결을 당할 수 있는 의뢰인을 보호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의뢰인이 정말 무죄일까 하는 의문은 중요한 게 아니다. 변호사의 1차적인 임무는 의뢰인의 변호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p.161)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독일에서 검사는 당파적 입장을 취해서는 안된다. 검사는 어디까지나 중립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검사는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그러나 본격적인 재판이 벌어지면서 열기가 더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객관성이 흔들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검사의 승부욕이 자극을 받는 것이다. 또 그게 인간적이다. 아무리 훌륭한 검사일지라도 그는 어디까지나 기소를 한 원고이다. 기소를 해서 피고를 법정에 세웠음에도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이는 우리네 형법 체계가 갖는 약점이리라. 법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셈이랄까."(p.304-5)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알고보니 저자는 위증의 혐의를 제기하며 독일 정보부를 고소한 사건,

배우의 병력을 허락없이 공개했다며 독일 정부를 고소하는 사건 등으로 독일 내에서는 이미 유명한 변호사였다. 

왠만한 수임료보다는 매달 통장에 찍히는 인세가 훨씬 높지 않을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판에는 두 가지 차원이 얽혀 있다.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가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충분한가'의 문제가 첫 번째다. 그것은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음 피의자가 범인이라는 게 확정되었다면, '형량을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가 두 번째 문제이다. 범인의 범죄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그에 알맞은 형량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일에는 언제나 도덕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아 보는 것이다.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책머리에서)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문체로 사건 속에 사연을 녹아낸 저자의 글솜씨는 본 책의 높은 가독성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본 책은 2편도 있고 작년에는「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까지 출간되었다. 모두 저자가 자신의 의뢰인이었던 범죄자들의 충격 실화를 담고 있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어렵지 않게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무겁지는 않되 흥미로운 실제 사건을 통해 법적인 딜레마를 고민해볼 수 있게끔 한다는 측면에서 추천한다. 

+ '아무리 끔찍한 행위를 하였더라도 그 사람은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차원에서 영화 <스파이 브릿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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