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여태산(安如泰山).
마음이 태산같이 끄떡없고 든든함을 뜻한다.
내가 오늘 그랬다. 마음이 참 편안했고 내 자신이 든든했다.
앞으로 올지도 모르는 숙주반응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결국엔 이놈의 백혈병 훌훌 털어내는 나의 모습이 느껴졌다.
사회든 학교든, 국내든 미국이든 저기 저 바깥에 나가서 무엇을 (다시) 시작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아주 잘 하고 있으리니.
진단 받기 전처럼!
컨디션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문득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몸이 편해서 그랬던 것 같다.
오늘은 영화와 책 보다가 달콤한 낮잠도 자고, 엄마가 끓여두신 감자탕 배부르게 먹고. 잘 쉬었다.
나는 무균실에서의 항암, 방사선 치료˙척수항암˙토끼혈청 등의 이식 전 처치를 하면서
육체가 정신을 지배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마무리 되어가는 하루 속에 알파카의 편지가 도착했다.
올해 초 20대 후반이 다 되어서야 군대를 간 아끼는 후배이자 사랑하는 동생이자 가까운 친구인 알파카.
편지에 "올곧은 자들에게는 어둠 속에서도 빛이 솟는다"는 성경 구절을 보내왔다.
세례명 '베드로'로 천주교 세례를 받을 예정이란다.
난 10년 전 급성간염을 앓으면서 본래부터 강하게 믿고 있지도 않던 신앙을 버렸다. 잃은 것이 아니라 내가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토마스' 라는 세례명이 나에게 더 어울리게 된 상황.
백혈병 진단은 종교에 대한 나의 회의를 강화시킬 줄만 알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무균실에서 항암을 하면서 점차 기도를 하게 되었다. 강남성모병원이기에 아침마다 기도 방송이 흘러나온다. 처음에는 너무 듣기 싫던 그 시간을 나중에는 맘 속으로 함께 했다.
이식병동에서는 기도의 빈도는 줄었지만 절실하게 드렸다. 이식이라는 최종적인 치료를 앞두고서는 더 이상의 failure는 치명적이라는 생각에 부담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다녀가신 신부님과 수녀님도 한 몫하셨다.
날 위해 기도해주고 있는 감사한 분들이 참 많다.
완치만이 보답의 길이다!
오늘 내 안에 솟은 빛나는 태산을, 그 희망을
여기 이렇게 기록해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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