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다큐의 제목인 '휴머니멀'은 인간(human)과 동물(animal)의 합성어이다.
실제로 쓰이는 말은 아니고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라는 내용에 맞게 제작인이 만든 단어다. 본 다큐는 MBC 2019 창사특집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올해 초에 5부에 걸쳐 방영되었다. MBC 창사 특집 다큐은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과 같이 유명한 국내 다큐들을 선보여왔다. '휴머니멀'은 특히 내가 좋아하는 동물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만큼 더 관심이 갔다.
그치만 '동물을 좋아한다'는 말이 너무나 순진하고 한가하게 느껴질 불편한 장면들이 본 다큐에는 많이 담겨있다. 우선 1부 <코끼리 죽이기>에서는 상아를 노린 밀렵단에 의해 처참하게 죽은 아프리카 코끼리들과 인간에게 부모를 잃은 고아 코끼리들 그리고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학대 당하는 태국 코끼리들이 나온다. 3부 <어떤 전통>은 일본 타이지 마을과 북대서양 페로제도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돌고래 학살을 담고 있다. 떼지어 지나가는 돌고래들을 한 쪽으로 몰아 넣어 잡는데 정말 끔찍하다. 사회적 유대감이 강한 동물이라 무리가 죽음을 당하고 있어도 도망가지를 않는다.
상아가 뽑힌 채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죽은 코끼리를 코끼리 무리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
돌고래 살육으로 쌔빨개진 바다..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3x70m3eTWKQ
가장 분노가 차올랐던 편은 2부 <트로피 헌터>이다. 트로피 헌터는 말그대로 멸종위기종을 포함하는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사냥한 동물의 일부를 트로피처럼 박제하는 사람들, 아니 새끼들을 말한다. 가관인 것은 얘네들의 철저한 자기합리화이다. 자신들이 소수의 동물을 사냥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이 현지 사회에 돌아가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잡은 동물은 박제할 부분을 제외하고 식량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한다고 말한다. 다큐에서 한 트로피 헌터는 "우리는 와서 돈이라도 쓰지 우리를 비난하는 너희는 도대체 뭘 했냐"고 당당히 인터뷰하는데 순간 흠칫하긴 했다. 그러나 저들의 목적은 쾌락이지 결코 보호가 아니다. 90%이상이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트로피 헌터들의 한 예로 등장하는 미국인 여자는 수컷 하마를 쏘고 나서는 씩 웃는데, 정말 악마의 웃음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이 다큐가 비관적인 모습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4부 <지배자 인간>에 한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력들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있다. 코뿔소 복원 프로젝트가 바로 그 주내용이다. 정력에 좋고 암을 치료해준다는 이유 때문에 코뿔소 뿔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정작 코뿔소의 뿔은 우리 인간으로 따지면 발톱처럼 각질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에 의해 그리고 탐욕에 의해 코뿔소들은 지구 곳곳에서 멸종되었다. 수마트라 코뿔소가 대표적이다. 본 다큐는 지구상에서 단 두마리('나진'과 '파투')만 남은 북부흰코뿔소의 대가 끊기는 것을 막으려는 전세계 생명공학 드림팀의 합동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2018년에 마지막 수컷 '수단'이 죽어버리면서 자연번식의 방법은 없어졌다. 다행히 사전 채취한 정자와 나진과 파투에서 채취한 난자로 인공수정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배아는 북부흰코뿔소와 가장 유사한 유전자를 지닌 종인 남부흰코뿔소 중 한마리에게 옮겨질 계획이라고 한다.
인간으로 의해 멸종의 위기까지 내몰렸지만 인간에 의해서만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슬픈 아이러니이다.
역시 이 세상에는 어지르는 놈과 치우는 놈이 따로 있다..
익숙한 배우들이 나와 내용을 전달하는 점은 분명 본 다큐의 장점이다. 류승룡, 박신혜, 유해진이 직접 아프리카 대륙과 미국, 태국에 가서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거나 동물들과 교감한다. 기본 나레이션은 김우빈이 맡았다. '사실 평소에 생각해본 적 없다', '이러한 현실을 모르고 살았다'는 배우들의 대사가 공감됐다.
이 다큐가 내가 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획기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다.
또한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이윤에 의해 잠식되어 가는 것이 단연 동물의 존엄성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다큐는 이전에 내가 해온 다짐들(ex.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가지 않기)과 누군가는 지구 반대편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내겐 충분히 유의미했다.
끝으로 넷플릭스의 <우리의 지구>를 추천하며 본 포스팅을 마친다.
<휴머니멀>에서도 아프리카의 대자연이나 태국의 코끼리 공원 등에서 멋진 풍경이 종종 나오지만 <우리의 지구>와 비교하면 턱도 없다. 웰메이드 자연 다큐멘터리는 몇 개 봤었지만 <우리의 지구>만큼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을 선사했던 시리즈는 없었다. 무엇보다 단순히 각양각색의 자연을 담은 영상만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언급하는 그 관점이 맘에 들었다.
특히 체르노빌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재생력을 담은 시리즈의 맨 마지막 장면은 정말 큰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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