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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면역억제제 줄이기 대작전! (D+111)

Diary/투병일기(AML)

by 황제코뿔소 2020. 3. 19.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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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외래에서 면역억제제를 줄이자던 교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엄습하던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토요일 밤부터 입술 주변이 슬슬 느낌이 오더니 결국 일요일 저녁부터 간지러움이 시작되었다. 

면억억제제를 줄이자 피부 숙주반응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백혈병 환자들은 조혈모세포 이식, 즉 골수이식을 받은 이후에 면역체계를 인위적으로 억제해줘야한다

이식 받은 세포가 새로운 숙주에 생착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본 세포와 싸우면서 나타나는 증상이 숙주반응이다. 숙주반응은 환자마다 그 형태와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나는 다행히 경미한 피부 발진 및 간지러움과 간수치 상승 그리고 허리 및 하체 저림 증상 정도로만 나타나고 있다. 기본적인 생활에 지장을 받을만큼 불편한 것 없이 식욕도 왕성하고 컨디션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숙주반응이 약하게 오는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된다고 앞선 투병일기에 꾸준히 남겨왔다. 숙주반응이 약하단 얘기는 이식받은 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출처: 질병관리본부

하지만 현재 혈액검사 상으로 혈액수치 3대장인 백혈구(호중구), 적혈구, 혈소판 모두 이식 전에 비해 쭉쭉 올랐다. 혈소판이 정상치에 조금 미달한 상태이지만 본래 혈소판이 가장 예민하다고 한다. 의사가 그랬다. 백세모 같은 카페에 사람들이 올린 글에도 혈소판 수치가 본래 가장 늦게 회복된다는 얘기가 많다.

무엇보다 백혈병 1인자 의사가 한달 후에 외래 오라고 했으니 뭐.. 괜찮게 회복 중이란 뜻 아니겠는가.

어찌됐든 한달 전에 면역억제제를 줄이자고 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하루 2알 먹던 것을 1알로 줄이자마자 간지러움 증상이 피부 발진과 함께 올라온 것이다. 상당히 괴로웠다. 특히 이번에는 증상이 목에 집중되었다. 목 쪽 피부가 퉁퉁 부워서 거북이 등딱지처럼 거대한 덩어리들이 맺히고 쩍쩍 갈라졌다. 

만약 또 반응이 오면 외래를 잡으라고 지난 목요일에 안내를 받았었다. 그러나 병원에 간지 1주일도 안된 상황에서 또 다시 외래가서 혈액검사하고 대기하다가 교수님을 만날 필요가 없으리라 판단되었다. 코로나 때문이라도 병원 방문은 왠만하면 피하는게 좋다는 측면도 있었다. 

그래서 혈액내과 외래 프런트 직통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했다. 내 주치의인 김희제 교수님 담당 간호사를 바꿔 달라고 하니까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차피 면역억제제를 1알 늘리라고 하실 것 같은데 병원 안가고 그냥 제가 1알 더 먹으면 되는 건지 묻고 싶어서요. 며칠 지나지도 않은 지난 목요일에 진료를 받았고 코로나 때문도 있구요. 1달 전쯤에도 이같은 상황에서 그냥 면역억제제를 다시 늘렸거든요."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결론은 전화 진료.

와우. 나로서는 최선의 안이었다. 교수님께 현재 상황을 직접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해서 교수님의 또 다른 외래 진료요일인 화요일 오전에 전화로 진료를 받았다. 역시나 퉁명한 그의 말투 ㅋㅋㅋ

처방은 놀랍게도 면역억제제 복용량 증가가 아니었다.

면역억제제는 하루 1알로 유지하되 이틀에 1알 먹던 스테로이드제를 이틀에 3알로 늘리자는 것이었다. 

면역억제제를 슬슬 줄여보자는 교수님의 의지가 느껴졌다. 스테로이드제도 면역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지만 면억억제제 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피부과에서 받은 여분 약과 로션을 바르면서 버텨보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로션도 추가로 처방해주겠다는 것이다. 처방전은 담당 간호사님이 미리 정해둔 약국으로 팩스를 보내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루 로션을 바르고 스테로이드제를 늘려 먹은지 하루 만에..

목을 중심으로 퍼지던 간지러움이 일체 사라졌다.

정말 신기하다..

아직 방심할 수는 없다. 눈코입 주변은 여전히 살짝 살짝 가렵고 피부 트러블처럼 볼록볼록 올라와있다. 

그렇지만... 하루만에 차도를 보여서 너무 기분 좋다ㅠㅠㅠㅠ

지인 치과쌤(홍미당 소금식빵을 사다주신 바로 그 분)이 선물해주신 걱정인형 덕분인가.

이 인형을 직접 짜는 시간만큼은 순전히 나만 생각했다면서 건네주셨다. 큰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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